회의만 하다 끝나는 하루
연차가 올라갈수록 PM이 만나야 되는 유관 부서가 많아집니다. 처음에는 기획 디자인 개발 이렇게 만났지만, 점점 다른 업체도 만나고, 봐야 되는 업무 범위가 많이 넓어져요. 그러다 보니까 회사에서 하루 종일 사람들 만나고 회의하고 회의록 정리하고 나면은 제가 일할 시간이 거의 없어지는 걸 많이 느끼거든요.
그래서 이제 점점 버려야 될 거나 이제 덜어내야 될 거가 뭔지를 좀 생각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멘토님은 이제 점점 이 업무가 많아질 때 가장 먼저 뭘 덜어내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회사가 기대하는 리더, 그리고 ‘무엇을 덜어낼 수 있을까?’
우선, 회사마다 ‘리더나 매니저’에게 기대하는 모습이 천차만별이더라고요. 어떤 곳은 “임팩트 조금 덜해도 되니까 일단 빨리 진행해야 한다”가 핵심 가치인 반면, 또 어떤 곳은 “중요한 건 심도 있게 논의하고, 제대로 된 결과물을 내야 한다”라고 말하거든요.
그러니까 회사(또는 상위 결정권자)가 어떤 의사결정 스타일을 지향하는지에 따라, 내가 취해야 할 스케줄링 방식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빨리빨리’를 강조하는 회사라면, 제 경험상 회의나 일을 덜어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대신 회의를 빠르게 끝내거나, 빠르게 의사결정을 내려야만 하죠. 반면 심도 있는 논의를 선호하는 회사에서는, 한 번의 회의만으로 끝낼 수 없는 주제들이 많아지니 또 다른 식의 스케줄 관리가 필요한 거예요.
어쨌든, 회사의 문화가 어떻든 간에 “무언가를 덜어낼 수 있느냐”는 결국 내 업무 범위와 역할을 명확히 아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내가 ‘어떤 파트에 기여할 수 있고, 어떤 파트는 과감히 남에게 넘길 수 있는지’를 스스로 구분해야, 비로소 회의나 잡무를 줄일 수 있으니까요.
1. 비즈니스팀에서 ‘빠른 의사결정’이 중요했을 때
제가 한창 ‘비즈니스팀’에서 일할 때에는, 빠른 의사결정이 정말 중요했습니다. 과제의 목표와 일정이 분명하니까, 회의가 곧 실행이고 실행이 곧 결과였어요. 그래서 하루 종일 회의실에서 여러 팀과 의견 맞추다 보면, 정작 제 일을 할 시간은 없었죠.
한 번은 “이렇게 회의를 몰아서 다 하는 게 맞나?” 싶어서 일부 미팅을 팀원들에게 넘겨봤는데, 그 결과 의사결정을 못 내린 회의들이 도로 저에게 돌아오더라고요. ‘아, 결국 결론이나 방향성 제시는 내 몫이었구나’ 하고 깨닫게 됐죠. 그래서 그 뒤로는 ‘의사결정이 필요한 단계인가, 아닌가’를 분명히 갈라서, 결정이 필요한 타이밍이라면 제가 직접 들어가고, 아직 목표나 일정이 확실치 않은 상황이라면 팀원들에게 먼저 탐색하게 했습니다.
2. 지원팀에서 '명확한 역할분배'가 중요했을 때
지금은 ‘공통서비스기획팀’이라는 곳에서 일고 있는데, 이 부서는 이름부터 ‘공통’이라서인지, 영역이 명확하지 않다는 특성이 있더라고요. 누가 뭘 담당해야 하는지 애매하다 보니, 팀원들에게 회의를 위임해놓으면 결국엔 일이 다시 제게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이제는 R&R이 확실하게 정리될 때까진 제가 회의에 참여하고, 이후부터는 팀원들에게 전권을 주는 식으로 바꾸었습니다.
예전에는 “아, 중요한 회의니까 내가 일단 다 들어가야지”라고만 생각했다면, 이제는 “어떤 회의에 내가 꼭 참여해야 하고, 어떤 회의는 다른 분들이 잘 진행할 수 있을까?”를 먼저 판단합니다. 결과적으로, 의사결정이 필요하거나 R&R이 불확실한 미팅에는 제가 들어가지만, 어느 정도 가이드만 있어도 충분히 돌아갈 만한 회의는 팀원들이 주도하도록 넘기는 편이죠.
믿고 맡긴다고 하더라도 “아, 그래도 내가 회의를 빠지면 뭔가 놓치는 게 아닐까?” 하고 불안하실 수 있어요. 저도 그랬어요. 팀원들이 대신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도, 놓칠까 봐 전부 챙기려다 보니 결국 제 본업에 쓸 시간이 너무 부족해지더라고요.
그런데 막상 해보면, ‘의사결정이 필요한 회의 vs. 그렇지 않은 회의’를 구분하고 적절히 넘기는 게 훨씬 효율적입니다. 디자인 회의에서 이미 UI/UX 방향이 확정된 상태라면, 저는 PM이 빠져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컨셉과 정책이 이미 정해졌다면, 디자이너와 개발자가 세부를 더 자유롭게 논의해도 됩니다. 물론 큰 변수가 생길 것 같으면 다시 제가 회의에 들어가서 방향을 잡아주긴 하지만요.
'위임'과 '거절' 사이엔 많은 옵션이 있어요.
사실 “그거 팀 리더니까 가능한 거 아니야?”라고 많이들 여쭤보세요. 근데 저는 리더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기획 단계에서의 정책 결정에는 꼭 참여해야 하겠지만, 이후 디자인·개발 단계로 넘어가면 실제 작업자들이 더 많이 알고 있을 수 있잖아요. 그렇다면 굳이 내가 모든 회의에 다 들어가서 가이드할 필요는 없는 거죠.
스스로 “내 역할에서 무엇을, 어떤 속도감으로, 어디까지 책임질 건지”를 정해두면, 자연스럽게 어떤 회의에 들어가고 어떤 회의는 넘길지 기준이 잡히거든요. 단순히 회의가 많으니 ‘아무 회의나 막 덜어내자’가 아니라, ‘지금 이 단계에서 내가 반드시 결정해야 할 게 있는가?’를 면밀히 살펴보는 게 포인트예요.
즉, 나의 역할에서 무엇을, 어떤 속도감으로, 원하는 결정을 할 것인가에 따라서 스케쥴링 전략을 다르게 가져가야 합니다. 단순이 회의가 많다는 현상은 제대로 된 문제정의가 아니에요.
하지만 막상 현실에선 “거절해도 되나?” 하는 마음이 들 수 있죠. ‘내가 빠지면 민폐 아닐까?’ ‘결국 일이 또 내게 돌아오진 않을까?’ 이런 불안감도 있고, 회의를 거절하는 게 왠지 미안하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그런데 생각보다 회의를 거절하는 건 훨씬 다양한 방법이 있습니다. '안갈거임'과 '나는 아님', '아직 아님'만 구분해도 훨씬 마음이 편해집니다.
- 자신보다 의사결정력이 높은 분에게 위임
- 서면회의록만 공유받고 중요한 부분만 확인
- 목적이 불분명하면 주제 세팅을 다시 요청
이런 식으로 스마트하게 거절하거나 재조정해보세요. 제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으니까요. 그리고 무작정 거절을 표하기보다는 어떻게 해야 회의가 더 나아질 수 있는지 “이 회의는 목표가 불분명하니 한 번 더 정리된 다음에 만나요” 식으로 의견을 내면 오히려 상대도 시간을 아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작은 태도 변화만으로도, “회의로 하루 종일 바빴다”는 피로감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회의의 결과에 기대를 낮춰보세요
“그런데 그렇게 해도 회의가 줄어들지 않는다”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저도 그럴 때가 있어요. 어떤 이슈들은 한 번 만에 해결되지 않고, 2~3번쯤은 모여야 진전이 생기는 경우가 흔하니까요. 그래서 “도대체 언제 한 방에 결론이 나지?” 하고 짜증이 날 때가 있죠.
이럴 땐 회의의 목적을 아주 작게나마 설정해두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어, “이 회의에서는 내가 무엇만 얻어가면 되겠다”라는 식으로 스스로 목적을 작게나마 설정해두는 거죠. 이렇게 목적 자체를 다양화해두면, “이 시간 자체가 헛되지 않았다”는 느낌을 조금 더 쉽게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시간을 나에게 어떻게 유리하게 쓸 수 있을지 고민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불필요해 보이는 회의라 해도, 그 안에서 내가 놓치면 안 되는 정보나 사람들의 생각 흐름 등을 파악할 기회가 될 수 있거든요. 이렇게 의도적으로 에너지를 분배하면, 회의가 덜 비효율적으로 느껴집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하나의 아젠다가 한 번에 해결되는 경우는 드물다고 생각하시고, “이 이슈는 약 3번 정도 회의를 하게 되겠다” 하고 미리 예상해보는 겁니다. 그리고 첫 번째 회의에서는 “서로 어떤 어려움이 있고, 어떤 맥락에서 고민하는지” 정도만 이해해오겠다고 내 회의 목적을 세팅해두는 거죠.
그러면 회의 중간에라도 어느 정도 목적 달성이 이뤄졌다 싶을 때,
“지금 회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결론까지 도출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서로의 상황은 어느 정도 이해한 것 같으니, 다음 회의 전까지 각자 3~4개 정도 방안을 검토해오면 어떨까요?”
라고 제안하면서 회의를 일찍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다음 번 회의가 훨씬 더 명확해지고, 실제로 문제 해결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결국, 회의가 많아지면 “어떻게 덜어낼 수 있을까?”라는 고민은 모두가 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정답은 “회의를 다 없애자”가 아니라, ‘내가 꼭 챙겨야 하는 회의와 그렇지 않은 회의를 구분’하고, “이 회의에서 무엇만 얻어가면 되는지” 목적을 명확히 하는 데 있습니다.
특히 연차가 올라갈수록 일은 늘고, 유관부서도 많아지죠. 그래서 제 경험상, 의사결정이 필요한 단계에는 직접 뛰어들되, 아직 목표나 일정이 불투명하거나 실행만 하면 되는 단계는 팀원·동료에게 과감히 넘기는 게 답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야 비로소 제가 해야 할 ‘진짜 일’에 시간을 쏟을 수 있었으니까요.
여러분에게 정말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요? 혹시 '중요해 보이는 일에 뛰어다니는 일'은 아니었을까요? 이번주 캘린더를 돌아보고 중요하지 않은 일 하나를 거절해보세요. 처음은 힘드니까요. '해서는 안될 일은 아니니까 해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