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하다 보면 '최선을 다했다'라는 표현을 쓸 때가 있습니다. 일이 넘쳐나는 환경에서 내가 없으면 안 돌아가는 것 같은 느낌은 가끔은 뿌듯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나 없다고 일이 안 돌아가는 환경에 허무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하루 종일 일을 하고서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동료들을 볼 때면 고생스러움에 위로와 응원을 남기곤 하지만, 그런 일상이 일주일, 한 달이 되어도 나아지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슨 일을 하길래 그렇게 소진되는 삶을 유지하는가 들여다보게 됩니다.

정말 일이 많아서, 팀에 사람이 부족해서, 나의 역량보다 주어진 일의 난도가 높아서 진짜로 야근을 밥보다 많이 해내야 하는 때도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너무 바쁜 나머지 일의 우선순위를 구분하지 못하고 오히려 닥치는 대로 해냈을 때입니다.

이런 경우는 일을 바라보는 관점이 했다(1) 혹은 안 했다(0)는 것으로 나뉠 때입니다. 일의 수준을 제대로 정의하지 못해서 1을 만들기 위하여, 그것이 내 기준의 완벽함에 부합해야 한다고 생각할 때 늪에 빠지는 것이죠. 이렇게 작은 일, 큰 일 가릴 것 없이 모든 일에 같은 에너지를 쏟아붓다 보면, 결국 중요한 일을 할 에너지가 남지 않게 됩니다.

적정한 Scale 을 결정하고 Effort 를 조정합시다 - ChatGPT 생성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마치 종이 전체를 검은색으로 칠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계획과 구상을 통해 힘을 조절하고 그림을 그려낸다면 전체를 파악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체를 파악하지 못하면 덜 중요한 일부터 하게 됩니다. 이것의 차이를 전문성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전문성이란 일의 경중을 구분하고, 그에 맞는 적절한 노력과 시간을 배분하는 능력입니다. 작은 일도 '이 정도 퀄리티로 마무리하면 충분하다'는 감이 있고, 중요한 일에는 그에 맞는 더 깊이 있는 고민과 시간을 쏟을 줄 아는 것이죠. 쉽게 말해, 노력과 에너지를 상황에 맞게 '스케일 조정'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전문가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나에게 100만 원짜리 일을 맡겼다면 그 가치를 충족할 만큼의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해야 합니다. 만약 그만큼의 노력을 들이지 않았다면 계약위반이죠. 반대로, 100만 원을 받고 1,000만 원어치의 시간과 노력을 쏟았다면, 그건 전문가가 아니라 호구 아닐까요? 어떠한 작업에 퀄리티를 결정하고, 자원 투입 여부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진짜 일 잘하는 사람이 아닐까 합니다.

일을 할 때의 메타인지란 '나 잘하고 있나?'가 아닙니다. "내가 지금 이 일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지는 않은가?" "이 일을 이 정도 수준으로 마치는 게 맞는가?" 이런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답을 찾으세요.

이 질문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정작 가장 중요한 일을 놓치고, 불필요한 일에 에너지를 다 쏟고, 스스로를 점점 지치게 만듭니다. 일을 하는 중에 생각해 내면 가장 좋은 타이밍입니다. 수시로 하기가 어렵다면 하루를 보낸 뒤에 돌아보세요. 오늘 하루의 최선이 현명한 최선이었는지, 무식한 최선이었는지.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지, 소모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모든 일에 에너지를 다 써버리면, 정작 예상치 못한 중요한 순간에 쏟을 힘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일의 무게를 가늠하고, 집중할 곳과 멈출 곳을 아는 사람은 언제든 닥쳐올 변화에 맞설 수 있는 에너지를 남겨둡니다. 그리고 이건 단순히 하루를 덜 지치기 위해 필요한 기술만은 아닙니다. 예측할 수 없는 변화와 불확실성에 대비하는 방법이기도 하죠.

우선순위를 정리하지 못하고 하루 종일 일하는 동료들을 보며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도 정작 중요한 일에서는 힘을 쓰지 못한 채 스스로를 탓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는 점입니다. 그 모습이 과거의 저와 너무 닮아있었기에 그래서 더 이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습니다.

웹툰 <미생>

에너지를 남기세요. 이는 게으른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정말 잘하고 싶은 일, 나다운 일을 위해 집중력을 지키는 법이니까요. 애는 쓰되 지치지 않고, 열정적이되 무리하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에게 일의 기회가 더 주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물이 꽉 찬 항아리에는 더 부을 수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