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이후 사회는 지식 사회임과 동시에 조직의 사회이다. 둘은 서로 의존하기도 하지만 개념 및 견해 혹은 가치 등에 있어서는 차이를 드러낸다. 비록 전부는 아닐지라도 대부분의 교육받은 사람이 조직의 구성원으로 일하면서 자신이 가진 지식을 활용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교육받은 사람은 두 개의 문화 속에서 동시에 일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만 할 것이다. 언어와 사상에 초점을 두는 '지식인(intellectual)'의 문화 그리고 사람과 일에 초점을 두는 '경영자(manager)'의 문화 말이다.
지식인들은 조직을 하나의 도구로 인식한다. 조직은 지식인들로 하여금 그들의 전문화된 지식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해준다. 경영자들은 지식을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는 수단으로 간주한다. 양쪽 모두 옳다. (중략) 만일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에 비해 더 큰 가치를 갖는다면 양쪽 모두에서 성과를 올리지 못하고 좌절감만 느끼게 될 것이다. - p334~335

오늘 독서모임에 읽은 피터드러커의 '프로페셔널의 조건'에 나오는 글입니다. 저는 배우는 것을 좋아합니다. 새로운 것을 배웠을 때 만족감, 효용감, 그리고 성취까지 느낍니다. 그래서 지식이나 기술 습득에 몰두합니다. 새로운 도구가 나오면 엄청난 재미도 느낍니다. 그걸 할 수 있는 (주로 삽질이겠으나) 충분한 시간이 있을 때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이라고 느끼며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내곤 하지요. 특히 관련된 책들을 읽으며 새로운 한 줄을 발견할 때, 글을 쓰면서 배운 지식들을 정리할 때, 연습을 하면서 수많은 실패를 거듭할 때 즐겁습니다.

하지만 가끔 제가 느끼기에도 과하다 싶을 때가 있어요. 다른 사람은 나만큼 공부를 안한다고 주입시키려는 시도를 하기도 하고, 배우는 과정 자체가 즐거워 결과따위 개나 줘버릴 때도 있고, 배운다는 행위 자체가 주는 만족감 때문에 닥치는 대로 배워대기도 합니다. 사실 가끔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실로 엄청난 시간을 투자하기 때문에 - 주로 잠 > 밥 > 휴식을 포기합니다 - 가족들이나 가까운 사람들과의 시간마저 고스란이 헌납할 때가 있죠. 무엇보다 배움의 즐거움이 크다보니, 일을 하는 시간은 소모라고 생각하여 일 잘해내기를 멀리하고 도피성 공부를 할 때도 있습니다. 맞아요, 그건 바로 지금!

강점의 과발현이 되는 저의 모습을 스스로 관찰하면서, 지난 몇 달간은 반성모드로 지낼 때도 있었는데요. 왜 반성모드였어야만 했는지 드디어 깨달았습니다. 나의 만족을 위해 배우는 것과 관리하는 것을 나누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말이죠.

문득 돌아보니, “배움이 관리의 도구”라는 멋진 명분 뒤에는 사실 “관리라는 현실로부터의 도피처로서의 배움”이라는 이면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뭔가 그럴싸하게 “더 잘 관리하기 위해 배운다”고 말하면서도, 막상 일이 주는 책임감이 조금이라도 무거워지면, 재빠르게 책 속이나 공부로 숨어 버리고 있는 제 자신이요. 그러고 보니 이것도 어찌 보면 꽤나 비겁한 태도가 아니었나 싶어 부끄럽습니다.

물론 배움 자체가 나쁜 건 아니라고 스스로 달래 보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제게 맡겨진 일을 조금 덜어놓고는 책을 파고드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종종 듭니다. 제가 그렇게 열심히 익힌 지식들이 곧장 업무나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좋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을 때가 훨씬 많았죠. 애를 써서써 배우면서도, 정작 현장에서 실제로 적용하거나 누군가와 협력해 가치를 만드는 일은 우선순위에서 미뤄두었던 모습도 떠오릅니다.

피터드러커가 말했던 것처럼, ‘지식인(intellectual)’과 ‘경영자(manager)’라는 두 문화가 대립하는 건 아니지만, 제게는 이 둘 사이의 시소처럼 균형이 너무 한쪽으로 기울고 다시 반대로 기울기를 반복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이런 생각을 하게 되니 오히려 마음 한편에서 “그래도 나 계속 배우는 건 멈추고 싶진 않은데…” 하는 약간의 반항심도 생기네요. 어찌 보면 지식에 대한 제 욕심은 제 장점 중 하나인데, 그걸 핑계 삼아 현실적인 책임을 미뤘던 모습이 부끄럽네요

저는 여전히 배움이 좋고, 멈추지 않겠죠. 다만 이제부터라도 그 배움이 정말로 “더 나은 관리와 책임”을 위한 동력이 되는 방법을 찾아보려고해요. 배움이란 것이 단순히 제 개인의 만족감을 채워주는 행위가 아니라, 제가 속한 조직이나 주변 사람들에게도 의미 있는 결과로 이어지도록, 부디 조금이라도 실행에 옮겨야겠어요.


프로페셔널의 조건 - 예스24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영의 대가, 피터 드러커 교수가 제시하는 자기 실현의 비결. 21세기 지식 사회의 주역이 될 지식 근로자가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 어떻게 일해야 하고, 자기 자신은 어떻게 스스로 관리해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자기 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