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읽히지 않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니
주말동안 나의 트위터가 RT를 타느라 매우 바빴다. (대략 5천RT + 인용 500회 정도) 글 읽기의 어려움에 대해 쓴 글이었는데 정말 많은 관심이 있었고 인용도 있었다. (아무래도 번아웃
과 난독증
키워드에 걸려들었ㄷ..) 플텍계 인용은 보이지 않아서 모든 반응에 대해 알 수 없었지만, 나만 그런건 아니구나의 안도감과 모두 그렇구나의 안타까움이 함께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활자중독자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나는 활자중독이라고 할 정도로 글 읽는 것을 좋아한다. 차를 타나 길을 걸으나 거리에 있는 모든 간판들을 읽고 다니고, 자기 직전까지 책을 읽거나 (자주 쓰지는 않지만) 글을 쓰는 것도 좋아하는 편이다. 어떤 분량의 글도 씹어먹을 정도로 좋은 소화력을 지녔지만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는 가장 먼저 직격탄을 받는 영역이기도 하다. 읽기에 체력이라는 게 있다면, 계단 오르는 걸 힘들어하는지, 걷다가 주저앉을 정도인지, 아예 걸을 생각을 못할 정도인지 등등 다양한 상태로 나타나서 스트레스가 어느 수준에 다다랐는지 가늠할 수 있게 됐다.
- 문장에 집중하지 못해 같은 문장을 여러번 읽고 있다. 무의식적으로 여러번 읽다가 ‘음? 나 왜 페이지가 안넘어가지?’ 하고 깨달을 때가 있다.
- 글씨만 읽고 글을 이해하지 않고 넘어간다. 무슨 내용인지 이해하지 않고 눈으로만 보고 읽을 때다. 글씨만 읽고 있기 때문에 나중에 누가 책내용을 물어보면 모른다.
- 종이책이든 전자책이든 그냥 넘기기만 한다. 2에서 조금 더 심해진 상태라고 볼 수 있다. (글씨도 읽지 않음)
나처럼 책을 읽는걸 좋아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직장생활을 하면 글을 읽고 써야할 때가 많은데 그럴 때 글이 읽히지 않는다는건 정말 괴로울 것이다. 주변에 이런 증상을 가진 개발자분들이 몇 있는데 기획서가 안읽혀서 너무 괴롭단 이야기를 할 때 안타까움은… 여튼 나는 글을 읽어내고 피드백 해야 하는 업을 가지고 있고, 글을 읽지 못할 때 받는 스트레스가 더 심해지는 데다가 책을 보면서 현실에서 벗어나는 시간을 가지는 편이기 때문에 나는 스트레스를 받아서 읽지 못할 상황에도, 읽어내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하는 편이다.
트윗을 인용하신 분 중에 ‘번아웃이 오면 쉴 생각을 해야지 왜 읽으려고 하냐’는 분들도 꽤 있었는데 동의한다. 번아웃이 오면 어쨌거나 쉬어야 한다. 하지만 번아웃으로 가는 길은 사람에 따라 몇달, 몇년이 걸릴 수도 있기도 하고. 앞에 말한 것처럼 읽어내는 행위에서 스트레스를 풀기도 하기 때문에 증상에 따라 적절한 노력을 하는 거라고 이해해주시는게 좋을 것 같다. 내가 글을 읽지 못할 때 시도하는 방법을 4가지 정도로 추렸고, 단계별로 시도할 때가 많으며 스트레스 상황과 별개로 독서습관이 된 것들도 있다.
🖍 줄치면서 읽기
종이책에 펜을 긋기 시작한건 최근 몇년 사이 일이다. 책 모서리는 접어도 펜은 대지 않았는데, 도저히 읽히지가 않아 시작했던 방법이다. ‘다 읽고도 좋은 책이면 또 사면 된다.’ 라는 생각으로 긋기 시작하여 이 허들을 넘는데 성공했고 적당히 스트레스 받는 상황에서 적절한 방법으로 쓰였다. 글을 눈 앞에 두고, 생각이 다른 곳에 가있는 경우에 손 끝으로 주의 집중을 시키고 허튼 문장에 선긋지 않기 위해서 조금더 집중력을 높이다보면 딴 생각이 사라졌다. 처음 5장~10장 정도를 집중있게 읽고나면 나머지는 자연히 몰입하게 되어 좋았다.
🙌 조금만 읽기
평소엔 3시간 정도면 왠만한 교양서적 한권은 읽어내는 속도인데, 이렇게 읽으려고 하다보면 페이지를 생각없이 넘기게 될 수 있기 때문에 아주 작은 분량을 정해놓고 천천히 본다. 일반 교양 서적은 한 챕터의 분량이 크지 않으니 10장 내외의 분량을 한 시간동안 곱씹으며 아주 천천히 읽는다. ‘왜 이렇게 눈에 안들어오지?’ 라는 생각을 하지않고, ‘나는 일부러 천천히 읽는 거다’ 라고 생각하면서 독서의 강박을 내려놓고나서 한 챕터를 읽고나면 적게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해냈다는 느낌이 들어서 편하게 독서시간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특히나 다음번에는 그 책을 다시 잡지 않았던 것 같다. 시작한 책은 끝까지 읽어야한다는 초조함이 항상 있었기 때문에, 그때 그때 흥미로운 책을 잡는게 더 효과가 좋았다. 일주일에 한권씩 4권을 읽으나, 하루에 한챕터씩 돌려가며 4권을 읽으나 시간 지나면 다 똑같다. 그리고 완독을 안해도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된 뒤로는 필요한 부분만 읽는다는 생각으로 접근하고 있다. 최재천 교수님 유튜브에서도 "세상에 책이 너무 많으니 필요한 부분만 보는게 낫지 않겠나”라는 말을 하셨는데, 위안이 됐던 것 같다. 그러고보면 세상까지 갈 것도 없고. 내 책장에 읽은책보다 안읽은 책이 더 많으니까.
✍️ 쓰면서 읽기
내용을 이해하는 만큼 그림을 그리거나 요약해가면서 읽는 방법이다. 시각화를 도와주기 때문에 오히려 평소에 후루룩 읽을 때보다 더 깊은 이해를 하게 된 것 같다. 평소 독서방법이 안씹고 삼키는 수준이었다면 이 방법은 단맛 나올 때까지 씹는 느낌이다. 이렇게 책을 읽다보면 다른 생각으로 확장도 되어서 가끔 야크쉐이빙을 할 때도 생기지만, 그래도 앞선 방법과 비교했을 때 무언가를 생산까지 해내는 방법이다. 종이 노트에 쓰는 것도 좋아해서 침대 발 밑엔 책장이, 머리맡엔 노트와 펜이 항시 대기 중이다. 요즘에는 아이패드랑 펜슬을 갖고다니면서 써보고 있는데 너무 좋다. (예쁘니까 사세요! 펜슬이랑 같이 사세요!)
👩💻 내 글을 쓰기, 읽기
남이 쓴 글은 기본적으로 나의 생각의 흐름, 호흡, 말투가 다 다르기 때문에 저자가 되어 글을 이해하기 위해 동기화에 보이지 않는 노력이 들어간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글을 보는 것이 정말 도움이 된다. 나의 생각, 나의 말투, 나의 삶이 녹아있는 글이기 때문에 어떤 글도 읽히지 않는 컨디션일 때에도 정말 잘 읽힌다. 읽는 방법과는 좀 거리가 있는 것 같지만, 내 글을 쓰게 되면 퇴고의 과정을 거치면서 수십번도 읽을 수 있다. 내 블로그의 바이라인에 적혀있는 것처럼 “스트레스를 받으면 글을 씁니다” 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고작 5개의 트윗을 블로그로 옮기면서 분량을 불리느라 이런저런 말이 많아졌지만 마무리는 간단하게. 누구나 읽는 걸로는 스트레스 안받으셨으면 좋겠다. 기분좋은 독서를 위하여 Cheers! 🍻
ps. 난독증
이란 듣고 말하는 데는 별 다른 지장을 느끼지 못하는 소아 혹은 성인이 단어를 정확하고 유창하게 읽거나 철자를 인지하지 못하는 증세로서, 학습 장애의 일종이라고 한다. 많은 아티클들을 찾아봤지만, 나처럼 글의 흐름을 간헐적으로 읽지 못하는건 난독증이라고 하지 않는 듯. (정확히 아시는 분들이 멘션해주시거나, 인용해주시면 부정확한 내용을 바로 잡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