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정리된 이력서보다 중요한 것
올 1월, 우리 팀에 4개의 포지션을 오픈하고 500개가 넘는 이력서를 검토했다. 작년에는 플랫폼 성격의 팀이었기 때문에 1년 내내 본 이력서가 50개 남짓일 텐데, 올해는 사용자 향의 새로운 서비스다 보니 최소 10배에 달하는 지원자들이 있었다. 업무 메일보다 더 많이 쌓이는 지원자들의 이력서를 보면서, 매일 아침 불합격 버튼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절대로 유쾌한 일이 아니다. 이 찰나의 판단이 좋은 분들을 놓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늘 찝찝할 뿐이고.
작년에는 아주 드물게 이력서를 보고 면접을 봤기 때문에 기준이 간단하여 면접을 볼까 말까 수준이었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정말 많은 이력서가 들어와서 더 명확한 기준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이전처럼 볼까 말까로 시작했지만, 기대와 다른 면접이 이뤄져서 안타깝고 실망스러운 순간들이 많아지면서 더욱 서류평가에 공을 들이게 되었고, 케이스가 많아지자 어느 정도 생각이 정리되면서 면접의 질이 점점 좋아지게 된 것 같다. 물론 내가 만든 기준이니 나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고(특히 다른 회사에 가면 그 회사의 문화에 맞게 또 바뀔 것 같기도 하고) 모든 팀장에게 먹힐만한 기준은 아니지만, 이러한 기준으로 면접을 봤을 때 시간 낭비했다는 생각을 덜 하는 것 같아서 기록해둔다.
이력서 평가 기준 5가지
1.🙋지원동기가 명확한가
요즘은 링크드인이나 원티드로 간단히 지원하는 방식들이 생기게 되면서 범용이력서, 노션 등의 공개 이력서 등을 제출하게 되는데, 덕분에 지원동기 없이 잘 정리되기만 한 이력서가 정말로 대다수를 이루고 있다. 처음에는 기술 스택이나 해왔던 일, 그간에 근무했던 회사들 같은 걸 보면서 종합적으로 1차면접을 진행했는데, 워낙 많은 이력서가 들어오면서 평가 기준을 더했다. 하도 많은 이력서가 쌓이니 지원동기가 없는 이력서만큼 눈길을 끌지 못하는 이력서가 없고, 그런데도 지원동기를 추가로 제출해주는 분들은 정말로 꼼꼼(1분 vs 10분 수준)하게 평가를 하게 되는 것 같다. 화려한 이력서와 경력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눈길이 가게 하지만, 심사자의 눈이 아니라 마음을 흔드는 건 지원동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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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동기의 기본 기능은 회사에 얼만큼의 관심이 있는지를 판단하게 한다.
회사가 좋아서거나, 사람이 좋아서는 좋은 지원동기는 아닌 편이다. 얼마든지 좋은 회사가 있을 수 있고 좋은 사람들도 움직인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왜 하고 싶은지 이다. 같은 일을 하는 회사도 많고, 비슷한 팀도 많다. 그 많은 경쟁지 중에 왜 하필 이 업무나 이 팀에 지원하게 되었는지, 확실한 이유가 있는 지원자라면 신입이더라도 면접을 잡고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게 만든다.
특히 한 회사의 여러 팀에 지원해도 되는 경우도 있는데, 개발자의 경우에는 채용하는 팀이 많다 보니 너무 다른 도메인에 중구난방 지원하게 되면, 진짜 이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타 팀 지원자의 이력서를 조회할 수는 없지만, 각 팀별로 마음이 드는 경우에는 각 팀에서 서류합격을 올리고 면접일정을 잡으려는 시점에서 중복지원자임을 알게 되어 drop 하는 경우가 있다. 한 회사에서 중복지원을 할 계획이라면 비슷한 도메인에 지원하는 것이 면접에 가까워질 수 있는 팁이다. -
지원동기를 보면 ‘퇴사’를 언제할지 판단하게 한다.
작용 반작용처럼, 지원동기는 퇴사 동기가 될 수 있다. ‘지금 있는 직장의 이런 불만족으로 이직을 결심’했다면, 우리 팀에 합류해서도 같은 이유로 퇴사 버튼을 누를 수 있기 때문에 동전의 양면의 성격을 갖는 문항이다. 밖에서 본 회사나 팀의 이미지가 전부가 아니기 때문에 현실에서도 같은 리스크가 있을 거라 판단된다면 서류 통과를 시키는 데에 조금 더 고민이 드는 게 사실이다.
참고로, 나는 개인적인 경험으로 인해 회사가 없어지거나 해서 짧은 기간에 무조건 이직해야 하는 경우에는 조금 예외로 두는 거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얘기는 서류에 잘 작성하지 않기 때문에 면접에 가서야 부득이한 사정에 의한 이직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 같아서 조금 아쉽다. -
지원동기를 보면 ‘동기’를 어떻게 만들어낼지 판단하게 한다.
또 ‘지원’을 걷어낸 ‘동기’는 스스로 어떻게 동기부여를 하는지도 알게 한다. 동료들과의 협업에서 동기부여가 되는 사람, 더 잘난 사람들 사이에서 스스로 성장의 목마름으로 동기부여를 하는 사람, 자신의 전문성을 더 갈고닦고 싶어서 동기부여를 하는 사람 등… 팀 매니저의 고민 반이 어떻게 저 사람이 동기부여를 시킬까이지만, 어느 정도 매니징을 해본 사람이라면 동기부여는 누가 주입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안다. 그러니, 자소서의 동기부여 항목을 보고 어떤 환경이나 업무가 이 사람에게 더 큰 동기를 찾아갈 수 있을지 판단하게 된다.
2. 🤼 어떻게 일하는가
혼자서 일하는 회사는 없다고 생각한다. 팀이 일하고, 팀은 또 다른 팀과 일한다. 물론 면접에서 100% 물어보게 되는 질문이지만, 지원서에 이미 적혀있다면 좀 더 깊게 대화를 나눠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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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방식은 ‘온보딩’의 난이도를 결정한다.
회사마다, 개인마다 일하는 방식과 업무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어떻게 일하는가에 대한 체득은 온보딩에서 굉장한 차이를 만들어낸다. 완전 워터풀에서 일하던 사람이 애자일에서 일하길 힘들어하고, 구두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사람이 문서더미에서 일하기 힘든 것처럼 어떻게 일하는 것을 선호하는지 적어주시는 분이 우리가 일하는 방식과 싱크로율이 높다면, 면접까지도 점수를 먹고 들어가는 부분이 있다. -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일했는지는 커뮤니케이션 숙련도를 알게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과 다양하게 일해봤는지의 경험을 적어두면 지원자의 커뮤니케이션 숙련도에 대해 미리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지금 회사는 조직도 만큼이나 커뮤니케이션 이해관계가 굉장히 복잡한 편이기 때문에 3~4명하고만 일해봤다거나 하는 사람이라면 적응하기가 어렵다. 개발이나 기획자도 프로젝트 당사자들하고만 일해봤는지, 타팀 기획/개발자들하고도 부딪혀서 일해봤는지에 따라 면접 퀄리티가 달랐던 것 같다. 그래서 이력서에 함께 일했던 프로젝트 구성원들을 기재하거나, 함께 일했던 기간들을 명시했을 때 서류평가 결과도 좋았다.
3. 🏋️♀️ 퍼포먼스를 내는가
채용 중인 모든 팀의 공통점은 사람 수보다 일이 더 많다는 것. 그래서 사람을 뽑을 때 똑같은 수준의 일을 나눠서 할 수 있는 수준만 되어도 채용을 할 때가 있지만, 그렇게 옆으로만 나눠 먹을 사람을 뽑는 것은 팀이 성장하기가 어렵다. 성냥갑에 성냥을 하나 더 넣는다고 불이 붙지 않듯이, 팀과 시너지를 내고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는 사람들을 채용하는 것이 회사라는 곳에서 사람을 뽑을 때의 기준일 것이다. 만약 나랑 비슷한 수준의 사람이 저 회사에 있는데 나는 왜 탈락이지? 라고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면, 정확하게 탈락 사유에 대해 이해한 거나 다름없다. 이미 똑같은 사람이 너무 많기에 탈락한 것이다. 현재 조직에 없는 사람, 더 나은 성과를 낼 수 있는 사람을 채용해내야 한다는 목표가 있기 때문에 확실히 차별을 갖기 전에는 입사하기가 어렵다. 그 차별은 새로운 스킬에 대한 것도 있지만, 같은 일을 할 때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방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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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만큼 결과는 중요하다
개발자의 이력서를 예로 든다면 ‘이런 기술을 썼고 이렇게 처리했다.’ 가 농담 아니고 정말 99% 정도다. 그 와중에 ‘그 결과는 이랬다’라고 적어주신 1% 만이 면접이 주어진다. 개발자들이 결과나 성과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성과를 측정할만한 환경이 주어지지 않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성과나 결과를 적어 낸 경력기술서는 정말 손에 꼽는다. -
퍼포먼스를 내고 싶은것과 내왔던 것은 다르다.
요즘 이력서에는 부트캠프나 교육과정, 스터디그룹, 토이프로젝트 등 회사업무가 아닌 이력들도 꽤 많은, 그리고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새로운 기술을 배워 발휘해보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나, 이것은 팀의 상황이나 채용 목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팀 내에 아는 사람이 없어 뭐라도 배워본 사람, 해본 사람이 필요한 경우라면 혼자 공부해본 경우도 좋은 점수를 받고 입사의 기회가 주어지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꽤 많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지금 우리 팀에는 새로 나온 기술을 도입하거나 하는 것들은 염두하고 있는 것이 없다. 이미 검증되거나 타 팀에서 적용한 기술들을 적용하지 않은 것들이 있지만, 지금 하는 기술 스택 내에서 최고의 퍼포먼스를 내는 사람을 원한다. 회사와 프로덕트매니저들이 요구하는 기능들을 잘 구현해낼 수 있는 것, 그래서 지금의 서류평가 기준은 얼마나 기술 스택이 일치하는지, 그 스택을 사용해서 어떤 결과물들을 만들어냈는지를 중요하게 보고 있다.
4. 🤯 어려움을 겪었는가
살면서 힘들었던 경험, 아쉬웠던 경험, 불가능을 가능하게 했던 경험 뭐 등등 이런 부정적인 경험은 대부분 성장의 뿌리가 된다. 흔히 우리가 수업료 (라떼는 말이야 2년 동안 스타트업한답시고 커리어도 날리고 1억 빚을 8년 넘게 갚으며…. 이 얘기는 그만하자) 라고 부르는 것들. 그래서 실패해본 경험 없이 잘한 것만 잔뜩 적어준 분들의 이력서의 첫인상은 ‘곱게 자랐군’ 에 가까운 것 같다. 천재적인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아무리 천재적인 사람이라도 아무 힘듦 없이 성장하는 것은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누군가 일정을 찍어눌렀을 때, 갑자기 스펙이 바뀌었을 때, 리더와 의견이 갈렸을 때, 작은 실수로 장애를 내봤을 때,.. 그런 내용을 적어주시는 분들은 점수를 얻는 데에 아주 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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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움의 경험은 스스로 성찰하는가를 알게 한다.
어려움을 겪어본 경험을 적어주는 것은 스스로 성찰하는 성격인지를 알게 한다. 면접이든 커뮤니티든 사람들과 이런 주제의 이야기를 나눠보면 ‘그때 걔가 개새끼였어’라는 퉁의 이야기만 남는 분들이 있다. 그런 분들은 자신을 돌아보지 않거나, 남탓으로 세상을 편히 사는 분들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어려움을 겪은 경험을 원인은 무엇이었는지 깊게 들어가 보고(5 whys를 생활화해보자) 진짜 원인이 무엇이었고 어떻게 해결하려고 동료들과 노력했는지 이야기를 적어낸 분이라면 좀 더 눈길이 간다. 반대로, 성장통은 겪은 만큼 성장하기 때문에 그 어려움의 깊이가 너무 얕았을 때는 현재의 수준도 가늠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어떤 경험을 기재할지에 대해서는 잘 고민해야 한다. 굳이 하드 스킬에 관한 게 아니어도 괜찮다. -
어려움의 경험 이후로 실제로 성장했는지 알게 한다.
스스로 배워갈 수 있는 사람인지는 의지대로 행동하는지를 보는 것이다. 어려움을 경험한 이후로 어떤 일들을 해왔고, 그만큼 성장한 내가 다시 그때의 상황을 맞닥뜨린다면 충분히 대처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는가를 알 수 있을 때 정말 좋았다. 이 부분까지는 크게 바라지 않고, 면접에서도 충분히 이야기 할 수 있는 부분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던 이야기들만이라도 적어줬으면 좋겠다.
5.👌 본인에 대해 잘 이해하는가
본인의 성격에 대해 잘 이해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생각뿐만 아니라 타인이 자기를 어떻게 평가해왔는지도 중요하다. 그런 것들을 잘 이해 했다면, 이제 팀에서 올린 JD를 잘 읽어보자. 팀이 어떻게 일하고,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 알 수 있다면 이제 지원을 하면 된다. 요즘엔 노선으로도 팀 홍보를 많이 하는 편이라서, 우리 팀도 오래전부터 노선으로 팀 문화를 소개하는 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다.
- 팀과 나의 지향점이 맞는지를 판단하게 한다.
단순한 비교로 두자면 기술 지향적인 사람이라면 비즈니스 지향적인 팀에 맞지 않는다. 더티 코드가 되어도 돈이라면 벌어야 하는 개발팀이 있고, 장애가 날 바엔 죽음을 달라는 코어기술 개발팀이 있다. 본인이 어느 성향의 사람이고, 어떤 지향점을 바라보고 지원했는지 명확히 드러날 수 있으면 좋다. 예를 든다면, 비즈니스팀에서 기술의 뭔가를 해내겠다는 의지는 높이 사나, 실제로 업무를 했을 때 업무 만족도가 땅에 떨어질 위험이 있다. 같은 관점에서, 우리 팀은 비즈니스팀이기 때문에 앞으로 비즈니스 개발을 하고 싶은지, 혹은 비즈니스 개발을 다뤄본 경험이 있는지를 주요 평가 기준으로 둔다. 물론 팀원이 수십 명이라 한두 명 정도는 그런 지향을 해도 괜찮은 건 사실이지만, 자신이 어디에 가치를 두고 있는지 명확히 알아야 팀의 요구사항에 같이 발맞춰 뛸 수 있다. 목표가 다르면 결국 외톨이가 될 거라서.
같은 회사더라도 팀마다 채용 기준이 다른 진리의팀바팀. 지난 3개월간 사업/기획/백엔드/프론트엔드 4개의 포지션을 전부 뽑으면서 포지션과 연차에 상관없이 적용했던 기준들이다. 지금은 파트별로 3명 정도인데 파트별로 6~7명씩 채우는 게 목표이기 때문에 앞으로 팀이 성장함에 따라 또 세세한 요구수준은 달라지겠지만, 이 기준들은 그대로 가져갈 것 같다. 서류평가 참 어렵고, 정말 공이 많이 들어가는 과정이다. 만약 지금 이력서로 내가 다시 지원한다면 나 역시도 떨어질지 모르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점점 채용기준이 높아지고 있는 것을 느낀다. 회사가 원하는 인재란 슈퍼맨…. 이 아니다. 이력서를 잘 정리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양식보다 중요한 것은 내용이고 메모장에 써서 내더라도 이런 내용이 들어있다면 얼마든지 면접을 볼 것이다. 여기까지 읽은 분들에게 남기고 싶은 한가지 팁이라면, 이 내용은 면접에서도 물어본다는 것. 이제 이 페이지를 나가기 위해 지금 채용 중인 포지션들을 눌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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