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을 돌아보며
링크를 걸 필요도 없네? 2020년 회고를 블로그 첫 페이지에서 넘기지 못한 채 한 해를 마무리한다. 올 한 해는 정말 바쁘게 살아냈다. 살았다는 말로는 부족한 해였다. 정말이지, 살아냈다. 사실 그동안에 쓰려다 삼킨 몇 개의 글이 더 있다. 팀장 1년 회고
라거나 커뮤니티 죄책감
같은 글을 초안의 수정까진 해두었지만 결국은 공개하지 못했다. 그렇게 한 해를 보낼 줄이야. 지금에서야 글을 내보내긴 늦었고, 그나마 써둔 글이니 올해 회고에 조금 녹여본다.
사실은 말이야, 미치겠어
2020년 1월께 팀장이 되었으니, 올해 말로는 벌써 꽉 채우는 2년이 되었다. 1년 차는 당연하게 모든 것이 처음이던 시절이다. 채용도 적극적으로 해보고, 민망한 1 on 1 미팅이 더 이상 손발 오그라들지 않을 때까지 밥 먹듯이 하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팀에 퇴사자도 있었고, 조직개편도 하면서 플랫폼성 도메인에서 서비스향 도메인으로 R&R도 바뀌었다. 어쨌거나 이렇게 저렇게 부딪히면서 하나씩 주어진 과제를 해냈다. 하고 싶은 일에 비해서 인력 충원이 쉽게 되지 않아서 욕심낸 만큼 많은 일을 해내지는 못했지만, 그런데도 작은 발자취들을 남길 수 있었다.
프랜차이즈시스템 팀은 나를 제외하고 기획 2, 백엔드 2, 프론트 4 정도의 팀이었다. 10명이 채 되지 않는 팀. 익스터널 어드민, 인터널 어드민, 배민앱 브랜드관, 사전예약프로젝트까지 한 걸 굳이 쓰고 보면 참 많은 걸 했네. 특히나 사전예약은 프랜차이즈시스템 팀을 처음 맡았을 때, 케익예약 하게하자! 라는 이야기가 씨가 되어 시작된 프로젝트다. 유관부서들이 매우 바쁜 와중이어서, 프로젝트 지원을 제대로 받기 어려웠고, 멋모르고 A to Z 신규 시스템을 구축하자는 결정을 했다. 상품, 전시, 예약, 구매, 빌링, 차액 대사, 현금영수증, 본사와의 중계 연동까지 지금 생각하면 작은 커머스 하나를 뚝딱 만들어냈다.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까지, 단 5분 만에 매진되는 사태에도 장애 한번 없이 지금까지 무장애급 서비스로 운영되고 있다. (소규모 장애 딱 한 번.)
프랜차이즈시스템은 말하면 딱 아는 메인 플랫폼은 아니었지만, 잘하고 있었고 더 잘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설마 나만 그렇게 생각했나?!) 앞으로의 과업이 가득한 상태에서 갑작스러운 서비스실로의 이동은, 더군다나 배민선물하기
전담팀이 되는 것은 사실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못해서일까,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일까, 목적조직이었던 팀 구성이 선물하기를 맡기기에 적당해서였을까. 추측할 수 있는 많은 이유는 있었고, 설득에 쓰인 이야기도 있었지만 가슴으로 납득하기에는 어려웠다.
첫 번째 위기.
팀 구성원들의 반발이 적지 않았고, 조직장으로서 설득의 근거를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 그러기엔 일이 먼저 찾아왔다. 발령이 나지 않았지만, 온갖 이메일 포워딩에 캘린더에 일정이 스며들었다. 정신 차리니 인수인계를 받고 있었고, 정신 차리니 선물하기에 새로운 기능을 배포하고 있었다. 여기 저기 콜트콜 오는 요청을 정신없이 받아주는 와중에 사업까지 총괄하게 되며 지표의 지옥에 빠져들었다. 오오. 사업계획.. 나도 그 지옥문을 열어보다니. 엑셀 때문에 밤새워본 게 언제인지 아득한데. 낮에는 팀장으로, 밤에는 기획자로, 새벽에는 사업담당자로 혼자서 하루 3교대를 했다. 업무를 나눌 기획자도 없었다. ex-프차팀은 다른 프로젝트를 하고 있었다.
홀로 선물하기를 막아내고 있는 동안, 그 프로젝트는 4월에나 끝났다. 그 와중에 조직개편으로 다시 프랜차이즈시스템 팀이 생기면서, 팀원의 일부를 새 빌딩을 위해 내어주어야 했다. 아니 그럴 거면 왜 없앤 거야? 왜 내가 가는 거야? 라는 얘기가 마음에 비수가 되었다. 상위의 의사결정이 있었지만, 나는 누구 하나 납득시키지 못해 입을 닫을 수밖에 없고, 그저 통보밖에 방법이 없던 시기가 있었다. 이쯤 되니 사전예약과 브랜드관 업무는 선물하기 팀이 맡을 이유가 없는데 도대체 왜 해야 되는 지에 대한 아우성도 빗발쳤다. 부문장까지의 컨펌을 얻어내서야 맡아줄 담당팀을 찾아 수소문하고 부탁하고 인수인계를 마치고, 또 마치고, 또 마쳤다. 어느새 9월에 접어들고 있었다.
혼란스러운 2021년이 안정기에 들어서리라 생각했다. 새로 입사한 분들이 있었고, 선물하기 2.0 프로젝트는 순항 중이었다.
그리고 암초. 두 번째 위기.
9월에 들어서며, 우리가 부딪힌 암초는 또 한 번의 조직개편이었다. 아니, 암초가 아니라 빙산에 부딪힌 느낌이었다. 배민선물하기팀과 쇼핑라이브서비스팀과 쇼핑라이브 파트너팀의 합병. 대략 40명 정도 규모에 달하는 거대 조직이 탄생하려는 순간이었다. 둘다 커머스를 지향하는 만큼, 함께 했을 때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보였다. 각 팀이 가진 단점을 상쇄시킬 수 있는 부분도 있었다. 부정하고 싶었지만, 선물하기 팀으로 전향될 때 경험으론 어차피 상위 결정이 뒤집히는 일은 많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그냥 빠르게 받아들였다. 조직개편 이야기가 나온 날부터 세 개 팀의 로드맵을 전부 꺼내서 맞춰보고, 위키를 전부 복습하며 과제 현황에 대해 대정리를 시작했다. 진행되는 과제를 제외하고, 백로그만 700~800개였다. 한줄 한줄 지워가며, 미래를 계획하는 동안 그렇게 모두가 스쿼드로 발령이 났다.
이때는 몰랐지만, 내가 나중에 깨닫게 된 것은, 선물하기 팀이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과제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팀원을 너무 믿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혹은 내 영향도에 대해 과소평가했을지도 모른다. 디렉터가 빠져나가면서, 프로젝트는 균열이 일고 있었고 나는 그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미경님은 바쁘니까 우리끼리 해보자 하고 참고 일하던 팀원들의 스트레스도 폭발했다. 그제야 실수를 깨달았지만 되돌리기엔 너무 늦었었다. 서비스를 오프하고 나서야 알았으니 말이다. 스쿼드 안정화로 여러 방면으로 도입했던 새로운 프로세스들이 프로젝트에 병목을 만들었고, 매달 한 번씩 하던 면담도 3개월 동안 하지 못했다. 1 on 1이라도 했더라면. 성급하게 프로세스를 손대지 말걸. 그냥 둘걸. 조급했던 결정들이 많은 사람에게 힘듦을 가중시켰다. 내 책임이다.
…나는 힘들었다.
앞에서는 힘내는 척, 응원하는 척, 위로하는 척 해야 했지만 수시로 주저앉고 있던 나였다. 이 회사에 다니면서 처음으로 다 그만두고 싶단 생각을 했다. 옆 팀장들과 술 마시다가 울고, 실장님이랑 면담하면서 울고, 선물하기 오픈하고 나서도 팀원들 앞에서도 울었다. 고작 보름 사이에 일어난 일들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무너지고 있었다. 서로 신뢰해본 적 없는 사이에서 걸려오는 블레임은 생각보다 견디기가 훨씬 힘들다. 나를 모르고, 나의 일을, 나의 어려움을 알기 어려우니 내가 더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단체 메일도 보내고, 웃으면서 면담도 하고, 코로나 검사를 수시로 당하면서도 만나서 차도 마시고 밥도 먹으며 스킨십을 하면서. 크게 생각하지 않고 그렇게 나가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고 다행히 지금은 회복 중이다.
오늘 이 긴 글을 쓰게 된 것도 사실 디즈니 영화 덕분인데. 엔칸토
에서 마법의 힘으로 힘이 센 언니 루이사가, 부담감과 책임감 속에서 많은 감정을 느끼지만 표현할 방법을 찾지 못하는 상황을 그린 곡이다. (결론은 생뚱맞지만, 디즈니플러스에서 보기에 적절하다.)
사실은 말이야, 미치겠어.
해내지 못하면 난 가치 없는 사람
사소한 실수도 안돼 마치 살얼음판
끊임없이 뚝뚝뚝 떨어지는 자신감
한계까지 툭툭툭 쌓이는 부담감
감당 못하면 나는 어쩌지?
지금의 자신감은 높지 않고, 부담은 한계에 간당간당한 수준이다. 다행히도 감당 못 할 일이 분명히 있고, 어려움이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게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솔루션이라는 것을 안다. 이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솔직해지는 것이며, 어렵고 힘든 건 힘들다 이야기하는 것이다. 같이 이 부담을 나누어 가질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성장통이며, 어려움을 피하지 않으면 분명히 성장한다.
고 믿는 것 뿐이다.
이직 대신 선택하기로 한 것
이 타이틀에 놀랄 분들이 꽤 많을 것 같다. (놀라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무엇보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대단하신 겁니다. 일단 칭찬의 박수 👏 ) 이 질문을 던진 계기는 동욱(향로)님의 이직이었다. 커리어의 전환을 결정하게 된 과정과 근거를 나열해주는 것을 보면서 생각보다 나도 오래 고민하고 (약간의 우울감과 함께) 성찰을 하는 시간이 있었다.
앞으로 나는 무엇을 위해 이직을 결정할 것인가. 이 회사에 말뚝 박을 생각은없는데..(읍읍읍) 올해만 해도 몇 차례, 좋은 조건의 오퍼가 있었다. 문제는 나는 원래가 가슴 뛰는 서비스가 없고,C 레벨이 되겠다는 야망도 없다. 전 직장 스톡옵션이 얼마까지 올랐더라 하더라는 배 아프지만, 다른 로켓에 다시 매달리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대기업으로 가서 더 큰판을 벌이고 싶은 생각도 없다. (보이는 것과 다르게 욕심이 없다(?)) 시니어 레벨이 이직하면 조직의 신뢰를 얻고 성과를 보이는데 최소 2년은 걸린다. 잦은 이직이 주는 스트레스에 이골이 났기 때문에 앞으로도 몇 년은 이직할 계획이 없다. 무엇보다 이 회사에서 이직할만한 이유를 찾는다면, 이 회사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 같기도 하다. 신사업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도 아니며, 개선하고 싶은 시스템도 많아서 언제든지 어디로든지 팀을 옮기면 그만이다. 서비스니, 플랫폼이니 시스템이니 한 바퀴를 돌고 보니 무엇을 만드는 기획 일에는 더는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인가? 그럴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조직을 빌딩 하는 데에도 2년쯤하다 보니 채용도 반복 업무이자 일상업무나 다름없어서 뭔가 새로운 도전을 느끼지도 못하는 것 같다. 아니 그냥 지금은 아무 일도 하고 싶지지 않은 상태일지도 모르겠다.
나의 일의 의미를 찾는 것이 너무 늦었나 싶지만, 오랜 생각 끝에 다다른 곳은 동료의 성장과 자존감이었던 것 같다. 커뮤니티를 10년 가까이 운영하면서 생각한 것도 IT업계에 있는 사람들이 하고 싶은 일하며 좀 더 행복하게 일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고, 창업하며 지었던 사명조차도 우리 스스로 잘한다는 것을 증명하자는 의미를 담기도 했었다. 블로그를 하거나 어느 컨퍼런스에 가서 발표하는 것도 처음엔 나 잘났다고 하는 발표였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했던 고생을 남이 덜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고, 앞으로 계속하고 싶은 일들도 그런 맥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적은 희생으로 큰 가치를 얻을 수 있다면, 항상 먼저 희생하는 쪽을 택했다.
기획자로서, 프로덕트 매니저로서의 전문성을 키우는데 욕심나지 않고. 조직장이나 전략가로서 제품 방향이나 이런걸 정하는 데에 목숨 걸지 않고. 누구나 일을 잘할 수 있는 환경과 사람을 생각하는 프로세스, 인풋과 아웃풋, 아웃컴이 연결되는 프레임워크를 만드는 것. 이런 일들에 조금 더 애정이 있고 애착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 올해의 가장 큰 수확이지 않을까.
더군다나 커뮤니티를 하면서 느꼈던 권태감에 대한 이유도 깨닫게 되었는데, 계속 오거나이저에 의존하는 형태나 선순환 구조를 만들지 못하고 항상 발표자와 리스너로 구분돼있는 모습에도 지쳤던 것 같다. 또 아무리 세미나나 커뮤니티가 좋고 도움이 되었다 하더라도 커뮤니티 구성원이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도 아쉬움이 컸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었는데. 이런저런 고민을 코로나로 행사를 접었던 지난 2년간 계속해오면서, 나의 커리어까지 연결한 고민을 상반기에 정리할 수 있었고, 하반기에는 덕분에 많은 곳에 하나씩 활동을 재개하게 된 계기를 만들어 준 것 같다.
이 결정은 앞으로 커뮤니티 오거나이저로서 타인에게 판을 깔아주는 일을 그만하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대신 내가 가진 내공을 콘텐츠로 바꾸어 널리 퍼트리는 일. 그래서 지난 2년간 커뮤니티를 운영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내려놓고, 실무에서 더 멀어지기 전에 플레이어로 뛰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하지만 여력이 된다면 판은 언제라도 깔 것이다..)
- 덕분에 퍼블리에 글을 하나씩 올리기 시작했으며
- 사내/외부 컨퍼런스에서도 발표했다.
- 원티드콘 : 서비스를 성공시키는 방법 <배민선물하기는 왜 1명만 보낼 수 있나요?>
- 2021 우아콘 <당신의 기술부채는 안녕하십니까? 배민선물하기 다시 만들기>
- 사내/외부 강의도 있었다.
- 중앙대 진로특강에서 PM이 하는 일에 대해 3일간 강의하기도 했다.
- 사내에서는 SQL 데이터 스터디를 구성해서 3개월간 강의하기도 했다.
그 외에는 팀에서는 독서 모임과 역량 강화모임 등을 주기적으로 만들어가고 있고, 11월~12월 두 달 동안 PM 인턴도 채용해서, 내년에는 신입 기획자를 위한 커리큘럼도 짜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간 책 한 권 쓸 수 있겠지 하면서.
이렇게 한 해를 마무리한다. 언젠가 올해의 글을 되돌아볼 때 그래 너 참 고생 많았었구나. 하고 토닥여줄 수 있는 큰 언니가 되어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