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종업계의 동일직군의 사람, 특히 IT 업계에서는 상대방이 사용중인 Tool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다. 상대방이 무엇을 만들고, 어떤 경력을 가진지는 별 관심이 없고, 어떻게 일을 하는지에 대해서 더 관심있어한다는 느낌이랄까. 나도 많이 묻기도 하고, 많이 질문당하기도 한다. 5년이라는 짧다면 짧은시간, 길다면 긴 시간동안 모바일 기획을 하면서 기획서를 위한 툴에 대한 소회랄까. 그 동안의 삽질을 통해 얻어낸 결론이랄까.

이 글을 쓰기위해서 쓴 글이 있기에 링크한 글을 먼저 읽어주길 바란다.

기획서를 쓰는 목적은 무엇인가

  1. 도큐먼테이션
  2. 리뷰 및 공유
  3. 커뮤니케이션

기획서는 어떤 프로그램을 써야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본 프로그램을 써라. 여기서 기본 프로그램이란 PPT/Keynote를 말한다. 내 기준에서 기본프로그램을 쓰라고 주장하는 이유를 10가지를 뽑아봤다.

1. 기획서는 모든 커뮤니케이션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가장 보편적인 양식으로 공유하고 리뷰할 수 있어야 한다. 윈도우를 쓰거나 맥을 쓰거나 아이폰에서 열거나 안드로이드에서 열거나. 언제 어디서든 접근가능해야하고, 특별한 프로그램이 없어도 볼 수 있어야 한다. 커뮤니케이션에 장벽을 두면 안된다. 따라서 작업은 각 프로그램으로 하되, 공유할 땐 PDF로 하자.

2. 기획툴이 프로젝트 기간을 잡아먹는다.

스토리보드용 서비스들이 넘쳐나지만 스토리보드는 기획서를 쓰는 시간을 더 늘일 뿐이다.핵심 화면에 한 줄의 디스크립션이면 충분한 요구사항을 스토리보드용 프로그램에서는 해당 화면을 다 그려야만 쓸모가 생기기 때문이다.
기획자의 산출물은 기획서 밖에 없어서인지.. 보기좋고 아름다운 기획서에 시간을 쏟는 시간이 많아지는만큼 개발자의 프로그램은 엉망이 되어갈 것이다. 데드라인 보존법칙에 의해 기획자가 시간을 잡아먹을 수록 개발기간이 줄어들기 마련이고, 제대로 된 프로덕트를 뽑을 시간이 잠식당할 수밖에 없다.

3. 버전관리를 필요하다.

실시간으로 반영되며, 린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스토리보드용 서비스의 단점은 버전관리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어떤 것이 변경되었는지, 어떤 화면이 추가되었는지 눈으로 트래킹하기가 쉽지 않다. 히스토리는 없고, Now만 있는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것은 현재 상태의 공유 그 이상 이하도 할 수 없다. 화면이 한 두개면 모르겠지만, 요즘의 서비스들은 수십개의 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어디가 변경되었는지 확실히 알 수 없으면, 계속 그것을 보고 있지 않은 사람은 전체 중의 변경사항을 파악하는 것 조차 일이다.

4. 기획도 모듈화를 해야되는 시대다.

하나의 앱이나 서비스에서 전체를 한 문서에 다루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탭이라면 탭별로, 기능이라면 기능별로, 라이프사이클에 따라서 기획도 모듈화를 해나가야 한다. 기본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업데이트 되는 기능에 해당하는 모듈만 공유하면 깔끔하다. 전체가 공유되면 히스토리 트래킹이 어렵고, 2-3장 업데이트 되었다고 100페이지에 가까운 전체기획서를 공유하는건 패킷낭비다.

또 앱/서비스 기획도 이제 어느정도는 글로벌 표준이라는 것이 잡혀가고 있다. 따라서 어디서나 자주쓰이는 기능들은 정리해두면 좋다.(개발자도 자기가 프로그래밍한 것들은 이직할 때마다 들고다니면서 구현하는 시간을 줄인다. 그런데 기획자는 왜 똑같은 삽질을 반복하는가?)

5. 자기 것을 만들어 나가야한다.

지금 있는 회사에 뼈를 묻을 생각인가? 아니겠지. 정말 길어야 3,4년 근속하고나면 다른 기회를 향해 커리어를 업데이트 해야한다. 개발환경도 회사마다 다르긴 하지만, 기획자의 환경은 어마어마하게 다르다. 대기업같은 곳에서 일하게되면 문서보안이니 뭐니 하는 것들 때문에 외부 프로그램을 못쓰게되는 상황도 발생한다.

6. 러닝커브가 없어야 한다.

목업/스토리보드용 서비스들은 회원가입부터 계정관리까지 추가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더군다나 그런 것들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건 어떻게 해야되는거지 하고 한참을 클릭만 하며 헤멜 확률이 크다. 혼자서 작업하는 사람이라면 상관없겠지만, 조직에 속해있고, 팀원들이 있다면 그것을 수정하고 추가하는데에 러닝커브가 없어야 한다. 그래야 후임도 받고 협업도 할 수 있다. 언제 때려쳐도 인수인계 없이 회사를 떠날 수 있으려면 러닝커브가 완만한 프로그램을 사용해야한다.

7. 다른 사람은 당신만큼 똑똑하지 않다.

가끔 개발자들은 기획자들은 왜 공부하지 않느냐 좋은 툴이 많다고 훈계하는 걸 본 적이 있다. 좋은 툴이 많다는 것을 몰라서 쓰지 않는 것이 아니다. 이제 막 신입의 1년차도, 직장생활 20-30년 이사님들도 기획서를 요청하고 열어보고 수정할 수도 있다. 기획서는 누구손에 가더라도 활용이 될 수 있어야하는데, 혼자 스마트한 척 해서는 업무프로세스와 커뮤니케이션에 방해가 된다.

8. 프로덕션 기획서라도 리포트용 기획서가 될 수 있다.

스토리보드로 전체 기획서를 구성했다 하더라도 전사PT 임원PT 등 프레젠테이션이나 보고를 위해 충분히 사용될 수 있다. 스토리보드로 연결해둔 것들을 전부 뜯어내 문서로 옮겨내는 것은 처음의 기획에 비해 2-3배의 노력이 든다.

9. 기획서 툴은 메인이 되기 어렵다.

IDE나 Console, 그리고 SVN 이나 Git 의 비교적 어느 회사에 가나 비슷한 개발자의 작업환경에 비해 기획자의 환경은 다양한 편이다. 98%는 윈도우환경이고, 2% 정도가 맥을 쓰는데, 해외에서 유행한다는 기획서용 툴은 맥용이 대부분이다. 혹은 웹앱이거나. 윈도우와 양식이 호환되는 프로그램이 있더라도, 기능의 차이는 발생할 수 있다.

10. 기본도 제대로 못하면서 응용을 원하지 마라.

수많은 목업툴은 기획서를 좀 더 쉽게 써주게 하는 도구에 불과하다. 기획을 정말 잘하는 분들은 보면 A4 한장만으로도 명확하게 커뮤니케이션하고, 지금 당장 개발을 들어가도 될만큼 명확하게 정의한다. 까페에 앉아 냅킨에 끄적거려도 전체그림이 그려질 때도 있다. 비싸고 좋은 툴이 없어서 기획을 못한다고 생각한다면 기획자를 그만두는 것이 모두를 위한 일일지도.


3년 전 쯤인가. 발사믹을 보고 환호를 지른 적이 있다. 파워포인트로만 기획서를 써야되는 줄 알았던 나는 이런 획기적인 툴이! 하면서 열심히 스터디를 했다. 내가 원하는 컴포넌트를 추가하기 위해서는 내가 디자인한 파일이 필요했다. 디자인을 하고 다시 업로드를 하고, 그것을 이용하고, 다시 수정해서 업로드하고… 불필요한 작업이 계속됐다. 다른 툴을 또 찾았다. 또 다른 툴을 찾았다. 최근 2~4년 사이에 시중에 나와있는 대부분의 툴을 스터디했다. 윈도우용, 맥용, 아이패드용 앱까지. 계정을 다 만들고, 여러번 써보기도 하고, 팀내 공유도 해보고 스마트한 툴을 찾기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뭔가 그럴듯한 화면은 되었지만, 만들어준 템플릿에 내가 조합한 컴포넌트를 올리면 이질감이 심했다.

그러는 동안 기획 본연의 목적을 계속 놓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예쁘게 쉽게보다 내가 조금 돌아가더라도 정확하게, 그리고 일관되게 기획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후엔 모든 프로그램과 툴 사용을 중지했다. 지금은 키노트와 선, 원, 사각형 기본도형만으로 모든 화면을 기획한다. 처음엔 답답했지만, 꾸준히 연습하면 문서 프로그램도 손에 익고, 훨씬 자유도 높은 기획서를 그려낼 수 있게 됐다.

제대로 된 툴을 도입해서 제대로 쓰려면 리드기획자가 있어야하고, 툴에 대한 교육도 필요하다. 클라이언트앱을 쓰려면 전사가 동일한 OS 환경을 가지고 있거나 웹서비스를 쓰려면 사용자당 금액을 결제해서 전체 기능을 파워풀하게 사용해야한다. 무료로 운영되는 웹서비스는 언제 문을 닫게될지 모르는 일이다. 그럼 Export는? Backup은?

결국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은 튜닝의 끝은 순정.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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