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기억에 남을 2020년
올해의 회고를 올해는 다들 빠르게 쓰는 것 같다. 나도 해를 넘기기 전에 평생 기억에 남길 한 해를 기록해보려고 한다. 9월 이후로 처음 쓰는 글인데, 회고라도 쓰는게 어딘가 싶다.. 글을 꾸준히 써야하는데 정말 쉽지 않았던 한 해였기도 하고.
Covid-19
전 국민이 그렇겠지만, 올해는 이 코로나가 나의 생활 전체를 바꾸게된 가장 큰 사건이었다.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재택근무가 강제되면서 집은 더이상 잠만 자는 곳이 아니었고, 창고 역할을 하던 책상은 점점 사무실의 모형을 갖추어갔다. 오래된 FHD 모니터가 있었기에 4K 모니터를 추가로 구입했고, 키 높이가 맞지 않고 앉으면 삐그덕거리던 4만원짜리 의자는 허먼밀러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어쩌면 회사보다 좋은 데스크를 세팅했지만, 그럼에도 회사가 더 집중도 높은 업무가 가능했기 때문에 최대한 조심스럽게 출근을 했는데, 1.5단계와 2.5단계를 넘나드는 사이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여전히 얼굴을 보지않고 비대면미팅에서 맥락을 읽어내야하는 난해함에 적응하기는 어렵지만, 이제는 꽤나 익숙해진 것 같다. 하지만 난 지금도 사무실에서 일하고 싶다..ㅠㅠ
전세집 이사
두어 발자국이면 화장실-침대-주방-책상으로 이동하다보니 하루에 50걸음도 걷지 않아 감옥이 따로 없었다. 심지어 낮밤이 뒤바뀌는 업무패턴은 그런 생활을 더욱 부채질했다. 더군다나 밥을 해먹으면 음식냄새가 일할 때도, 잠잘 때도 방해가 됐다. 처음에는 밥 때를 놓쳤기 때문에 배달음식으로 삼시세끼를 먹다보니 집구석에 플라스틱이 가득히 쌓여갔다. 환경에도 못할 짓이었다.
재택근무 용품으로 집을 질러야 한다는 말이 오가는게 진심이 될 때쯤, 내가 그 지름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뭐에 씌인 것처럼 찾아간 부동산에서 한번에 마음에 드는 매물을 발견했다. 거실과 주방이 분리되어 있고, 방도 두개나 되고, 심지어 구하기도 힘든 전세집인데 무려 회사와도 멀지 않았다. 그간 이사를 벼루느라 몇년 간 부동산 투어를 심심치않게 해왔던 나로서는 고민할 만한 이유가 없었고, 입주 한지 한달이 넘은 지금은 너무나 만족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다. 전세대란이 일어나기 직전에 계약이라 5천만원 가까이 저렴한 시세로 계약을 했고 (물론 주인분도 좋으신 분이라 시세를 알면서도 깍아서 계약을 했다) 대출이 막히기 직전이라 자금 조달에도 문제없이 계약을 진행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좁은 집의 제약을 벗어나면서, 가전제품들을 모조리 바꾸었다. 전에 쓰던 것들은 대학 때 (12년 전)에 독립하며 산 것들이거나, 원룸에 맞춰 산 작은 가전들이 대부분이었다. 짝이 맞지 않거나 취향이 질린 그릇 하나까지 전부 버리고 거의 몸만 이사했기 때문에 냉장고, 책장, 세탁기, 건조기, 청소기, 로봇청소기, 식기세척기까지 모든 가전제품을 샀다. 특히나 대형가전제품은 바꾸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번엔 예산이 허락했으니(은행님아 고맙ㅋ) 최상위 모델 위주로 맞췄다. 덕분에 집안일에 들이는 시간이 엄청 줄어들었고, 생활 만족도도 굉장히 높다. 이사를 못했으면 더욱 회사 생각이 간절했을텐데, 이사하면서 집안일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많이 낮아지다보니 지금은 집에서 일해도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됐다.
팀장
올해는 이 키워드를 빼먹기 어려울 것 같다. 아마 첫해라 더욱 길게 느껴진 것도 있겠지? 아마 출산 직후~돌까지의 시간이 억겁인 것처럼 아직도 내가 팀장을 맡은지 1년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팀장은 1월에 됐으니 아직도 만 10개월차. 올해 덕분에 너무 힘들었고, 너무 힘들고, 너무 힘들고 있다.. 도대체 언제 쉬워지는 걸까. 익숙해질만 하면 새로운 퀘스트가 뜨고, 퀘스트를 깰 때쯤이면 늘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된 느낌이다. 이제는 처음만큼 데미지를 입지 않다보니, 맷집이 좀 쎄진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 와중에 카운터펀치는 점점 더 쎄지는 것 같아서 큰일이다 😖 팀장 1년의 회고는, 정말 1년이 되었을 때 따로 남기려고 틈틈히 작성하고 있다. 그러니 올해 회고로는 이 정도로만.
참, 작년 회고를 보니 조직개편 이야기가 있는데, 올해도 조직개편을 크게 겼었다. B2B서비스실, 배민서비스실로 이동을 했고 프랜차이즈시스템팀에서 배민채널서비스팀으로 변경됐다. 팀장 입장에서 실이 바뀐다는 것은… to be continued
프로젝트
올해는 굵직한 프로젝트가 2개가 있었다. 굵은 것들은 너무나 굵다보니, 그 사이에 자잘한 과제들은 정말 자잘해 보이는 매직.
올 초 4월, 사업팀과 함께 브랜드관을 런칭한 일. 12월에 처음 얼굴을 본 팀원 4명이, 2개월만에 각개격파해냈던 그 프로덕트는 올 해 제대로 된 케어 한번 못받고 방치된 감이 없지않지만, 내년에는 제대로 된 개선이 예정돼 있다. 정해진 시간에 해내야 했던 과거의 유산들은 – 이거 누가 그랬어? 난가? – 이제 잘 발굴해서 고이 박물관에 모셔 둘 계획이다.
올 해 11월, 하반기 전체를 불태운 사전예약 프로젝트를 런칭한 일. 전시관리 어드민부터 프론트, 주문페이지, 주문부터 정산연동, 결제연동, 대사에 이르기까지 커머스의 Full stack 을 구현해낸 일이다. 상반기에 입사한 팀원들과 함께 기존 멤버들까지 팀원 전체가 뛰어들어 6개월을 신나게 뛰었다. 이것은 마치 계주가 마라톤인 느낌. 바톤 받자마자 바톤 넘기는데 계속 뛰어야 해서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피로도가 상당했다. 7월부터 12월까지 정말 6개월동안 기획, 개발, 운영까지 달렸기 때문에, 모르긴 몰라도 지금은 살짝 허할 걸? 일이 없다고 느낄 만큼. 하나부터 열까지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기에 애정이 가고, 사업적인 성과도 기대 이상으로 좋았기 때문에 의미있었던 프로젝트였다고 회고해본다.
문화생활
영화는 1개만 봤다. 테넷이 하도 말이 많아서 코로나를 뚫고 다녀왔다. 젤 앞줄은 사람들이 거의 앉지 않기 때문에 아주 스크린 가득한 타임 패러독스를 보느라 정신이 빠져나갔던 것 같다.
작년부터 뮤지컬을 보기 시작했는데, 올해도 뮤지컬들을 꾸준히 봤다. 코로나가 심한 시기를 피해서 비누와 소독제와 알콜을 갖고다니며 딱 공연만 보고 나왔다. <아이다> <레베카> <지저스 슈퍼 크라이스트(콘서트)>, <드라큘라>, <모짜르트>, <오페라의 유령>, <캣츠>, <노트르담 드 파리> 를 봤고, 요즘엔 네이버TV에서 후원하기를 통해 랜선공연을 보고있다. <엑스칼리버>를 봤고, 곧 <베르테르>도 볼 예정이다. 전체적인 공연감과 앙상블과의 무대를 볼 수 없어 아쉽지만 넘버 전체를 들을 수 있다는 데에 의의를 둔다. 내년에는 공연계도 다시 활성화되고, 랜선공연이라도 많이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 추세로라면 진짜 공연을 못보게 될 것 같아 슬픔.
올해는 책을 많이 읽지 못했다. 연 초에는 <도메인 주도 설계의 기술> <리뷰의 기술> 처럼 직무에 관련된 책을 보기도 했고, 시간이 지날 수록 <더 팀> <피터드러커 자기경영노트> <하이아웃풋매니지먼트> < OKR> 처럼 조직관리에 관한 책을 주로 봤다. 아무래도 팀장으로서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보니, 스스로 부족한 부분들을 빠르게 메꾸려고 책을 들쑤셨던 것 같다. 지금은 <디자인협업> <공정하다는 착각> <더 골> 같은 책을 읽고 있다.
코딩수업
바로 이전 글이 비개발자 코딩수업 에 대한 회고였는데, 그 이후로 놀랍도록 단 한줄의 코드도 짜지 않았다. 아, 젠데스크에서 파이썬으로 데이터 긁어와서 처리한거 한번 하긴 했는데 그게 전부였다 ㅋ… 이후로 리액트 공부를 좀 더 해볼까 해서 한번 더 수강신청을 했지만 더 놀랍게도 단 1번도 로그인하지 않았다. 내 수강료..ㅠㅠ 한치 앞도 모르고 계획없이 덤볐던 지라, 물리적으로도 수강이 불가능했다. 아마 앞으로도 다시 프로그래밍을 공부할 일이 있을까… 은퇴하면 생각해봐야지…
이렇게 한 해를 요약해보니 별게 없었던 것 같다. 그래도 올 해는 과거가 까마득한걸 보니 새로운 자극도 많았고, 고민도 많았고, 생각보다 훨씬 더 힘든 한 해를 보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나마 전염병의 데미지가 거의 없는 직종이라 무탈하게 보냈고 이를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함께 고통받는 많은 분들이 어서 제 자리를 찾았으면 좋겠다. 연말에 잊지말고 후원처도 더 찾아보고 그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