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의 ㅊ도 모른다. 2002년 월드컵 때 거리응원에 빠져서 열심히 응원은 했지만, 그걸로 내 축구에 대한 관심은 끝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이번 월드컵도 1경기만 봤다.) 그런데 최근에 갑자기 축구장이 머리 속에 맴돈다. 직업병이 도진것 같다.

나는 선수인가.

스타트업을 시작한 이후로 정말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스타트업에 뛰어든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날고 긴다는 사람들이 다 창업을 하고 있고, 대기업에서 경력을 잔뜩 쌓은 프로들이 자본과 노하우를 가지고 시작하는걸 보며 넘사벽을 느낀 적도 많았다. 스타트업이 되기로 마음먹고나서 다닌 수많은 행사에서 나는 꿔다놓은 보리자루마냥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경기장 젤 앞자리에 앉아 경기를 바라보는 축구꿈나무였다. ‘내가 어른이 되면 저렇게 멋진 선수가 되고싶다’ 같은?

1년이 지난 후, 지금도 물론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지금은 내가 선수가 되었다는 느낌은 든다. 아직 서비스도 제대로 런칭하지 않았고, 어떠한 투자도 받지 않았다. 기존에 출시했던 소소한 앱들은 다운로드 되는게 신기하다고 할 정도로 매출도 없다. 내 레벨을 알기에 IR같은 건 꿈도 꾸지 않는다. 그런데도 아이디어만으로, 혹은 이제 막 결성된 스타트업들이 굵직한 투자를 받아내고, 서비스를 곧잘 런칭하고 유저를 모으는 걸 보며 상대적 박탈감도 든다. 벤치에 앉아 선발선수를 바라보는 후보선수의 기분이 이럴까.

그래도 나는 뛰고있긴 하다. 아무도 봐주지 않는 선수긴 하지만. 화려한 선수는 아니지만. 경기장 한쪽에서 열심히 기회를 노리며 여기저기 뛰고 있는 선수말이다.

골 결정력

스타트업은 스타트업만의 생태계가 있다. 누가 강자고, 누가 약자인지 보이기도 한다. 누군가는 시장을 잡아먹고, 누군가는 잡혀먹는다. 그래도 사람사는 동네라고 끼리끼리 모이기도 하고, 친목모임도 생기곤 한다. 스타트업 인재들은 또 스타트업만의 맛을 잊지 못해 또 다른 스타트업으로 흘러들어간다. 돌고 도는 인재에 한다리만 건너면 웬만큼 알게되기도 한다.

아는 팀들이 생기고 나니, 내가 아직 힘도 없고 별 볼일도 없지만 없는 사람들끼리라도 잘해보자는 생각을 갖게됐다. 도움을 줄 때도 있고, 도움을 받기도 한다. 다만 어시스트를 줄 때는 그게 골로 연결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그냥 한 번 차보기라도 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타이밍 좋을 때 넘겨준다. 내가 먹고싶은 골이더라도 포지션이 안좋거나 타이밍이 나쁠 때도 있으니까, 좀 더 적합한 사람에게 던져주는 것. 때로는 (내코가 석자지만) 희생을 해서라도 도와줄 때도 있다.

그런데 공을 넘겨받은 사람은 골을 넣어야 하는지 다시 패스를 해야하는지 한참을 고민한다. (야, 이, 답답아!) 골결정력이 없는 선수는 그렇게 슈팅의 기회를 잃어버리고 만다. 내가 준것이 물병인지 공인지 분간을 못하는 거다.

코치는 선수가 아니다.

더군다나 요즘엔 왜이렇게 코치가 많은지. ‘멘토’라는 이름을 가진 그들은 한 둘이 아니다. 왕년에 날아다녔다던 전설의 선수들인데 지금은 경기장 밖에서 손가락질하며, 목소리 높이며 이렇게 뛰어라 저렇게 뛰어라하며 코칭을 한다. 분명 나보다 실력도 좋고, 체력도 좋고, 경험도 많다. 그런데 내가 뛰고 있는 경기장은 벤치에서 너무 멀어서 잘 들리지도 않는다. 뭐라고 하긴 하는데, 와닿지도 않는다. 흠 안들리는데… 하는 생각에 한숨쉬며 다시 공을 보며 뛰어간다.

사실 공은 제멋대로라서, 차려는 곳과 다른 곳으로 비켜나갈수도 있다. 그런데 코치가 차라는데로 차면 공이 들어갈거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그래놓고 골이 빗나가면 코치를 탓하게 된다. (에잇, 괜히 찼네. 실력없는 코치군!)

아니, 왜 뛰지도 않는 코치탓을 하는 건지. 코치가 내 두발과 내 머리를 훈련시켜줄 순 있어도, 내 대신 경기를 대신하지는 않는다. 코치가 저렇게 하랬어도 공이 내 앞에 왔을 때 본능적으로, 육감적으로 움직이는게 정확할 수 있다. 만약 내가 실력이나 체력이 부족했다면, 코칭대로 움직였어도 실패할 수 있다. 이 때, 코치는 물러나지는 않는다. 단지 선수명단에서 내가 빠지는 거다. 코치는 실력과 체력이 좋은 다른 선수를 또 가르치면 된다.

책임은 나에게 있다.

그래서 모든 선택은 나에게 있다. 그라운드를 뛰고 있는 사람은 나고, 드리블을 하는 사람도 나고, 어시스트를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나다. 수비를 해야하는 사람도 나고, 골키퍼가 되어야 하는 사람도 나다. 많은 창업가들이, 혹은 스타트업에서 일하고있는 직원들도 다들 남 탓을 하기에 바빠한다. 경기장에서 야유를 해요, 심판이 거지같아요, 공에 바람이 빠졌어요, 신발 밑창이 닳았네요 하는 것들 말이다.

파운더가 아닌 직원에게 책임감을 바라는 것만큼 바보같은 짓도 없다지만, 나는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직원이라면 직원 만큼의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임감 없는 직원은 스타트업의 아픈손가락이니. 아픈게 싫어도 잘라내지도 못하는. 나는 코파운더가 아닌 팀원에게는 ‘일정에 대한 책임’을 강요한다. 결과나 성과는 내가 책임지지만, 자기가 맡은 업무에 대한 일정은 본인이 정하고, 그 일정은 자기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이다.

직원이 아닌 대표자여서 ‘내가 책임질테니, 내가 하는대로 하자’하는 말을 뱉어본 적이 있다면 그 무게감에 대해 느껴봤을 터. 그런데 그 책임감과 무게감을 느끼면서도 선택과 집중을 하지 못하면 골결정력이 부족한, 상대 공격수에 혹은 코치의 손가락에 놀아나는 사람밖에 되지 못한다. 필요한 타이밍에 시간을 끄는 심사숙고와 신중함은 골 결정력을 더 낮출 뿐이다.

월드컵은 끝났지만, 스타트업, ‘그들’만의 ‘리그’는 현재진행중이다. 차이는, 내가 ‘뛰는 선수’가 되면 ‘우리들’의 리그가 된다는 것. 내가 뛰는대로, 내가 결정하는대로, 내가 책임지는대로 경기는 흘러간다. 힘들긴 힘들어도, 그게 바로 경기의 맛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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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흘리며 열심히 뛰는 선수는 조금 어설프더라도 멋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