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인사평가시즌이다. 작년까지만해도 나에게 평가는 내가 잘해왔던 것을 잘 정리해서 전달하는 것으로도 충분하였으나, 올해는 중간관리자가 되어버린 탓에 피평가자이면서 평가자의 역할을 동시에 하고 있는 중이다.

“~님은 ~해야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평가에 대한 피드백을 남길 때, 어쩌면 빠지지 않는 말이 아닐까. 요즘 회사에서 직책자교육을 받고 있는데, 엊그제 모임에서도 ‘내가 뭐라고 남을 평가하나요’ ‘저보다 연차많은 팀원들을’ ‘나도 못하는데’ 이런 고민들이 가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가작성란에 무의식적으로 ‘노력’이라는 단어를 po남용wer하다 갑자기 모든 사고가 정지하는 순간이 왔다. 결국 찾아온 현자타임.

~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노력, 노력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로는 무언가를 달성하기 위해서 몸과 마음을 다함이며, 네이버 백과사전 결과 중 하나는 어떤 동작을 하는 데에 반대되는 힘을 만났을 때, 그에 따라 생기는 주관적인 긴장이라고도 한다. 이 정의는 정말 ‘힘’을 설명하는 것이긴 하다. 하지만 큰 뜻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무언가를 하는데에 방해되는 혹은 거스르는 무언가를 이겨내기 위한 긴장. 그리고 몸과 마음을 다해 쓰는 에너지.

노력은 무언가를 달성해야한다. 조직장이 쥐어준 목표가 없다고 해서, 노력할 필요가 없나? 당연히 아닐거고. 전투기술을 높이는 노력을 한참 했는데, 기품이 없으니 기품을 키우는 노력을 해야한다고 피드백하는 것도 이상하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과제 혹은 팀단위로 목표가 설정할 수는 있어도, 개개인에게 무언가를 달성하라고 매니저가 구체적으로 설정해주기는 쉽지 않다.  프린세스메이커도 아니고, 스탯을 찍어서 3일에 기능하나를 찍어낼 개발자가 되려면 지력 몇 체력 몇이 되어야한다 제시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흠.. 좋은건가?)

프린세스메이커
이 아이의 엔딩은 무엇일까?

 

노력은 거스를 수 있는 힘이다. 평가자 입장에서 평가할 수 있는 항목들은 수천가지가 될테다. 기술적인 부분, 대인관계적인 부분, 성장가능성, 하다못해 체력이나 컨디션, 말투나 표정 같은 개인적인 자산들까지. 평가할 수 있는 항목들에는 사람이 노력한다고 되는 성질의 것들과 상황이나 환경의 제약으로 이겨낼 수 없는 성질의 것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그러니 노력해서 거스를 수 있는 것인가? 에 대해 1차적인 판단을 해야하고, 이후에 노력하라고 하든지 말든지 해야한다.

노력은 체력과 정신을 쏟는 과정이다. 체력과 정신을 쏟는 과정은 상대적으로 객관적인 평가에 가깝다. 반복되는 업무를 오랫동안 하면서 체력과 정신이 소모되기는 하나, 이건 고생에 가깝지 노력이라고 이야기하기 어렵다. 업무숙련도는 높아질 순 있겠으나, 더 높은 목표로의 나아감의 결과를 보기는 일을 열심히 했다고해서 ‘충분히 노력했다’ 평가해주기 어렵다.

여기까지 생각해보니 노력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개선 가능한 지점이어야 하며, 노력의 달성을 평가할 수 있는 목표를 설정해 줄 수 있어야 하며, 에너지를 쏟을 수 있는 환경까지 갖추어야 한다.

 

내가 꾸준글(ㅋㅋ)로 받는 피드백 중에 하나는 ‘단호한 성격을 고치려는 노력을 해주세요’가 있다. 성격이 고쳐질 수 있는 것인가. 나의 단호함은 선천적으로 탑재한 성격이라 고칠 수 있는게 아니다. (강 씨 고집은 유전이다. 헿..) 성격을 고치라는데, 어디로 어떻게까지 고쳐야 만족한다는 지표도 설정할 수가 없다. 그리고 내가 육체적 혹은 정신적 에너지를 쓸 수 있는 환경이 아닌데 어떻게 성격을 고치나. 그래서 이런 피드백을 받았을 때마다 ‘이렇게 생겨먹은 걸 어쩌라고’ 가 나의 결론이었고, 조금도 나아질 방법을 찾을 필요도 없었고, 바꿔보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성격을 다듬어 준 피드백이 있었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만 전달하는게 아니라, 타팀에서 원하는 부분을 언급해주면서’ ‘다른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서 본인의 단호함을 유연하게’. 장문의 피드백 전문에서 단 한번의 ‘노력’도 언급되지 않았지만, 이 피드백을 받은 이후로 나는 내가 변화해야하는 이유와, 변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에 대해 이해하게 되면서 시키지 않은 노력을 하고 있다. 사실 노력이라고 하기도 뭐하다. 목표도 없고, 거스르지도 않았고, 체력과 정신을 쏟지도 않았다. 다만 내가 갖고싶은 것 – 남을 설득하는 힘 – 을 생각하며, 단지 조심하게 된 것 뿐이다. (하지만 그래도 단호한 성격이 티 난다고들 한다. 하… 인생 내 맘대로 안된다 😩)

 

과거에 내가 받았던 피드백을 읽고 또 읽어본다. 그리고 내가 주는 피드백을 읽고 또 읽어본다.
피드백은 과거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하니까.
이 글을 쓰는 나는 변화하고 있는 것인지, 이 글을 읽은 이는 변화할 수 있을 것인지.

평가는 ‘노력’이라는 한 단어로 퉁칠, 그런 가벼운 글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써둔 평가들을 읽어보고 ‘어쩌라고’ 단어들을 모두 걷어내본다. 구체적으로 바꾸는 것은 조금 귀찮긴 하지만. 피드백에 진심으로 담겨서 잘 전해지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