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1월 7일. 작년 12월 7일 퇴사를 한 후, 벌써 한 달이나 지났다. 백수라기보다 하루하루가 휴가처럼 느껴졌다. 근속기간이 짧은 편이라 이직경험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매번 회사를 옮길 때마다 쉬어본 게 1주일 이내여서 이렇게 길게 회사 일을 하지 않았던 적이 없다.
사실 퇴사면담과 인수인계만 두 달이 걸렸고, 그 사이에도 신규 프로젝트로 정신없이 바빴기 때문에 (내 프로젝트는 잘 지내니?) 다시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공백기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전혀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 막연하게 여행이나 다녀올까 했지만 연말 성수기의 비행기와 숙박 비용을 둘러보다 접었다. 생각보다 12월은 퇴사하기에 좋지 않은 달이었다. 왜 아무도 말 안 해줌? 하여튼, 한 달 동안 해외여행 대신 하고 싶은 것들을 정했다.
🧘♀️운동 하기
필라테스를 등록했다. 쉬는 동안 운동은 꼭 하고 싶었고, 수영과 헬스 중에 고민하다 고른 건 필라테스였다. 겨울 수영장을 가는 건 더 큰 결심이 필요하다는 잘 알고 있고, 헬스는 혼자 하는 운동이라 재미가 없다. 수영과 헬스는 종종 해본 운동이어서 새로운 걸 해보고 싶기도 했다. 다행히 집 바로 앞 심지어 1분 거리에 새로 생긴 곳이 있어 총 8회 1:1 세션을 등록했고, 매일 아침 9시에 크게 지각하거나 빼먹지 않고 모든 세션을 다 완수했다. 이제 막 몸이 풀리는 정도의 수준이라 선생님의 추천에 따라 16회를 추가로 등록했다. 비싼 금액이지만, 아프지 않고 지내기 위해 앞으로도 주 2회 정도는 운동을 계속해보려고 한다.
🏥병원 가기
오랜 지병으로 족저근막염을 보유하고 있다. 발이 안 좋다 보니, 걷기도 무서워하고 요즘에는 집에서 움직이는 것도 아파하여 꾸준히 병원에 다녔다. 3주 정도 체외충격파와 도수치료를 병행했고, 다행히 별도의 주사제를 맞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나저나 어서 보험청구를 해서 카드값을 막아야 할 텐데.
📚책 읽기
아침은 일찍 시작하고, 밤늦게까지 놀아주는 사람이 없으니 가장 찾게 되는 친구는 책이더라. 잠들기 전까지 책을 손에 놓지 않았고, 한 가지 책을 계속 독파한 게 아니라 기기별로 다른 책을 걸어두고 동시에 3-4권을 읽곤 했다. 샤워할 땐 밀리의 서재나 오디오클립, 자기 전엔 리디북스 등등…. 근데 뭐…. 습관이 아니었던지라 재밌는 일들을 벌이고 나선 또 뒷전이 됐다. 끙.
🚗근교여행가기
늘 학교나 가족의 계획에 끌려다니기만 했지, 자발적으로 특정 지역에 간 건 1~2번밖에 되지 않아, 국내에도 이렇게 둘러볼 데가 많구나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던 것 같다. 호수나 바다처럼 잔잔한 물가에서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하는데, 모처럼 보는 바다가 좋았다. 다녀온 후에는 찍은 사진들로 포토북을 만들었다. 아이폰 XS의 화질은 꽤 좋아서, 책으로 뽑아도 위화감을 거의 못 느낀 듯하다. 대충 쓴 강화 여행기는 링크를 눌러보면 확인할 수 있다.
☕️회사투어하기
다녀온 회사는 총 8곳이다. 회사 투어는 처음 해본 건데, 소문으로만 듣던(?) 회사들에 방문해서 직원들을 만나보는 건 아무리 지인들이라지만 어쩐지 면접을 보러 가는 기분이었다. '언제 한번 놀러 갈게요'로 뿌려놓은 공수표들을 갚아나가는 기분으로 거리가 멀어도 최대한 만나고 다니려고, 중간에 3시가 이상 스케줄이 비면 계속 다른 회사 지인들에게 연락하여 방문했다.
페이스북코리아(서지연님), 프립(임수열 대표님), 레이니스트(윤방현님), 제플(진유림님), 코드스쿼드(김정 대표님), 크몽(박재영 CTO님), 오늘의 집(김고은님). 먼저 놀러오라 말씀해주시고, 갑작스런 연락과 방문에 반겨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신길동에서 코리빙을 하고 있는 하이브아레나에도 다녀왔다. 부부 호스트와 그들의 갓난아이와 글로벌IT기업의 개발자들이 사는 코리빙하우스는 국내 유일한 곳이지 않을까. 여름에 더 매력적인 곳일텐데, 올 6월에 이사를 해야한다고 하니 아쉬움이 크다.
그리고…. 퇴사한 야놀자에도 네 번이나 찾아갔다. 제 발로 나와놓고선 미련쩌는 듯. 하지만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그것도 3년씩이나 부대끼던 사람들이고, 매일같이 출근했던 곳이라 강남 주위에서 일이 있을 때마다 한 번씩 들러 전 회사 동료들과의 시간을 보냈다. 퇴사하고 듣는 회사의 이야기는 역시 🍿없이 듣기 어려운 것 같다. 나에게도 일상이었던 사건들인데도 제3자가 되어 듣는 이야기니 그들에게 감정 이입되어서 더 즐겁게 들을 수밖에 없었다. 배신자라고 안 만나주지 않아서 고마워요♥️
🔥커뮤니티하기
아마 한 달간 가장 많은 시간을 쏟아 넣은 일이었을 테지. 이상한모임 커뮤니티 재건축이다. 몇 달씩 방치된 운영이슈가 너무 많아 폐허 수준이라고 선언해도 될 정도였다. 웬만한 일들은 처리를 끝냈고 새로운 프로젝트도 벌이고 있다. 그동안에 새롭게 진행한 커뮤니티 활동은 원데이이모콘, 이모 앱 2.0 업데이트, IT 기술번역 크루 모집 등이 있다. 3월에는 콘퍼런스도 열 참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또 언제 이렇게 맘 놓고 벌려보겠나 싶어서 마음껏…. 수습은 미래의 내가 하겠지 🙂
운영에 있어 큰 변화 중에 하나는 커뮤니티 자산(짐 덩어리..)들의 거처를 마련한 것이다. 1년 반 정도 회사의 창고 공간에 보관해둔 짐들이 있었는데, 다른 커뮤니티 멤버들이 근무하더라도 관리자가 없는 이상 계속 짐을 회사에 둘 수는 없는 노릇이라 이번 기회에 마음먹고 알아봤다. 오랫동안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마침 오픈 행사로 50%를 할인하는 지점을 찾아서 나이스 타이밍으로 입주를 완료했다. 1년 뒤에 어디로 이사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당분간은 짐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지난 행사 영상 편집은 이번에도 하지 못해 매우 아쉽다. 편집작업은 낯선 작업이고, 도구를 사 러닝 커브를 극복하여 수십 개의 영상을 편집하기에 한 달은 조금 짧았던 것 같다. 특별한 일이 없는 주말에는 영상 편집을 좀 더 시도해보려고 한다.
'퇴사 후 한 달' 회고
아무것도 계획되지 않은 하루가 이렇게 긴 줄 몰랐다. 습관적으로 열어보던 메일함과 슬랙이 조용하고, 깨끗해져버린 캘린더를 보면서 어찌할 바를 몰라 식사까지 일정표까지 짤 정도였으니.
한 달의 일정은 대부분 집 밖에서 이뤄졌고, 갈 데가 많아져서 체력적으로 힘들기도 했다. 하루는 돌아다니지 말까 하는 생각으로 종일 카페에서 일해봤는데, 7시간씩 카페에 앉아있는 건 정말 고역이었다. 의자가 편한 것도 아니라 허리도 아파서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차라리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게 낫다 싶더라. 그래서 이동하는 시간과 쉬는 시간을 충분히 섞어서 스케줄을 짜고, 일정이 없는 시간은 블로그 테마도 손보고, 글을 쓴다거나 하는 시간으로 썼다.
아쉬운 점은 새로운 맥북을 똥코드로 더렵혀보려는 시도가 미수에 그쳤다는 것이다. 정적사이트 하나를 만들어보고 싶어서 관련 도큐먼트를 찾아보고, 구조를 짜보고, 기획이나 디자인을 해보다가도 '아무리 해도 내 손으로 완성은 못하겠는데?'이라고 생각하여 닫아버렸던 것이다. 역시 개발자의 길을 걸을 수 없는 몸이다.
최소 한 달 정도는 나빠진 체력과 건강을 되살리는 게 유일한 목표였기에 나머지 일들 - 커뮤니티 활성화나 지인들 만나기 등은 목표를 넘어서는 성과라고 생각한다. 지난 2년간 마음의 빚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한 달 동안 털어내고 나니 정말 홀가분해진 느낌이다. 정말로 2019년이 기대되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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