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스프린트는 나에게 번아웃이 아닌 슬럼프 기간이었다. 팀원들의 모든 질문의 화살이 비전이나 목적에 꽂혔고, 나에겐 준비된 답이 없었다.
나는 왜 깊게 생각하지 않고 일했던 걸까. 리더로서 자격이 없는걸까. 스프린트를 마치며 회고에서 말했던 것보다 사실 훨씬 더 많이 힘들었고, 일주일 넘게 몸이 앓아서 워킹타임만 겨우 버티고, 쓰러져 자길 반복했다. 잃어버린 식욕은 아직 돌아오지 못했고.. 그래도 이제 컨디션이 조금 회복이 되고있어서, 조직이나 프로젝트에 비전이나 목적을 굳이 찾지 않았던 이유가 뭘까 메타관점에서 생각했다.
갑자기 답을 찾은 느낌이라 글을 써두려고 하는데. 내가 일하는 목적이 항상 나에게 있었기 때문이라고 결론내렸다. 나는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길 바라고, 같은 문제라도 새로운 솔루션을 찾아내는 것을 즐기고, 그 결과가 나의 기대를 초과하길 바랄 뿐이다. 누가봐도 잘했네 소리를 듣고싶은 그 마음, 나의 경쟁상대는 항상 어제의 나이기 때문에 외부에서 주어지는 목적이나 비전은 그렇게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제까지 어떻게 조직과 얼라인 해왔던 걸까. 나는 정확한 목적과 목표보단 늘 방향이 중요했던 것 같다. 모로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느낌은 아니지만, 정확히 명시되지 않아도 분위기 파악했으면 일단 움직일 동력이 충분했던 것이다. 가다보면, 그리고 유관부서와 리더들과 중간중간 확인하는 시간으로 나의 방향을 조금씩 수정했기 때문에, 나는 늘 프로젝트가 만족스러웠다.
근데, 이런 성격, 운전할 때도 나타난다. 나는 내비게이션을 보지 않는다. 차에 앉으면 적당히 지도보고, 동서남북만 파악하면 일단 시동걸고 차를 움직인다. 도로에 들어서며 내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밟다가 한번씩 표지판을 보며 평소에 알고 있는 위치&지명을 파악한다. 음, 제대로 가고있네, 싶다가 목적지 근처에 다다라서 그럼 정확히 어디지? 하고 내비게이션의 방향지도를 따르는 것이다. 생활의 습관이 일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 일의 습관이 생활에 영향을 끼치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그래서 나는 나의 스타일이 아닌 팀원들이 원하는 목적과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 걸까. 내가 명확한 확신이 없는 그 무언가를 굳이 포장해서 내놓아야 하는 걸까. 회사의 사정에 따라 그건 언제라도 바뀔 수 있는데, 나는 지금 당장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야기를 해야만 할까.
아무래도 이 슬럼프, 오래 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