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치과의 블로그

회사를 그만두면서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그 동안 망가졌던 몸을 추스리는 거였다. 대표적인 것이 다이어트였고, 2년째 지병으로 앓고 있는 족저근막염이었고, 그리고 치과였다. 족저근막염의 경우는 다이어트도 해야 효과가 크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당장 걷는 것조차 아픈 통증은 너무 괴로웠다. 한달여동안 비싸고 아픈 치료를 두어번 받고 약을 먹으며 샌들을 신어도 될 만큼 많이 호전되었고, 그 사이에 이는 더 많이 아파왔다. 동시에 여러 가지 치료를 한번에 받을 만한 시간적, 금전적 여유가 없다고 판단했는데 이제는 씹기만 해도 잇몸까지 저려오는 통증에 각오하고 치과를 찾았다.

잠실 치과로 검색해서 나오는 곳은 몇군데 되지 않았다. 특히 집 근처에는 치과가 몇군데 뿐이었는데, 그 중에 하나는 잠실역과 바로 이어져있는 치과였다. 블로그 후기들이 있어서 보니 두 세개의 글만 보더라도 치과에서 제공하는 사진들로 쓴 후기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치과가 직접 운영하는 블로그는 치과전문의가 있는 병원으로 오세요 치학전문대학원 졸업 뭐 이런 학벌과 관련된 글이 대부분이었다. 블로그 마케팅으로 쓰여진 후기들은 시설이 너무 좋아요 가 전부고.

신뢰가 가지 않는 글들을 보며 좀 더 검색해보기로 하고, 출퇴근 동선으로 주로 선택되는 신천역 치과를 다시 검색했다. 그리고 촌스러운 블로그 하나가 검색됐다. 화려한 사진이나 잘 찍힌 사진들은 한 장도 없었다. 병원의 블로그도 아니었고, 치과의사가 직접 운영하는 개인블로그였다. 사진은 환자의 동의를 얻고 올린다고 모든 포스트마다 코멘트가 달려있었다. 내원하게 된 경위나 치료에 소요된 시간도 꼭 적혀있었다. 몇일이 걸릴 치료지만, 환자 사정에 따라 당일 치료를 했다는 얘기 같은 걸로. 시설이나 학벌에 대한 얘기는 아무것도 없었고, 단지 치료한 내용들의 Before & After 환자상태만 사진으로 기록해서 작성되어 있었다.

치료 과정을 보며, 이 정도 실력이면 믿어볼만 하겠다라고 생각이 됐고, (작년에 받았던 치료가 굉장히 맘에 안들었기때문에..) 의사의 마음가짐이나 생각들이 녹아져있는 글을 보면서 더 이상 다른 치과를 찾아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다음 날.

찾아간 치과는 신천역에 바로 이어져있는. 그 건물에만 해도 치과가 여러개, 마주보고, 길건너에 있는 치과들까지 합치면 거의 10~20개의 치과 간판이 보이는 것 같았다. 이동네에 이렇게 치과가 많았나? 싶을 정도로 많은데 왜 검색결과에 걸리는 치과들이 없었을까. 의문은 잠시 접어두고... 찾아간 치과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정말 훨씬 컸다. 개인의 블로그라고 생각해서 의사 한명에 간호사 1~2명 정도 있는 작은 규모의 치과일거라 생각했던 편견도 잠시. 넓은 로비와 많은 진료대, 고가의 장비들, 10명이 넘는 간호사와 치위생사들...

이렇게 좋은 시설과 인프라를 갖고 있으면서도 블로그에는 단 한 줄도 시설자랑이 없었다. 그 흔한 입구나 간판 사진조차 없었으니, 실로 받은 충격은 엄청났던 것 같다. 이미 신경치료까지 된 이가 아픈거여서 신경치료를 다시하거나 보철을 교체하라고 할 줄 알았는데도, 조금 만져줄테니 2주가 지나도 불편하면 오라고 하고 기본치료만 해준 병원. 작년에 다녔던 치과에서는 과잉진료를 받았단 생각에, 최소한 100만원까지도 나올 각오를 했었는데, 너무 별 일없게도 2만원만으로도 치료를 끝내고 나왔다.

정직한 사진과 사실의 글만 가지고도 신뢰를 주는 치과와 시설과 학벌로 자랑하는 치과. 검색해본 건 몇개 되지 않지만, 그것만 놓고 보더라도 나는 이 치과의사를 주치의 삼기로 했다. 사고로 어릴 때부터 보철치료도 받았고, 이가 잘 썪는 편이라 치과를 자주 가야하는데 서울 산지 10년동안 치과를 딱 집어놓지 못했는데, 이제라도 믿을 만한 병원을 찾아서 정말 마음이 놓인다.


내 블로그를 보는 사람이 많다. 그 사람들이 블로그를 통해서 보는 나는 어떤 사람일까?

적게 일하고 많이 버는 법을 늘 고민합니다. 일이 되게 하는 것에 간혹 목숨을 겁니다. 지금은 우아한형제들과 함께 일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