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e19. 시간과 정신의 방
8월 31일. 지난 글을 쓴지 꼬박 3개월 만이다. 다시 글을 이어서 쓰게 될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바쁘기도 바빴고, 사연도 많았다. 연재라는 말이 무색하게 많은 시간이 흐른건 차치하고서라도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강한 어조로 글을 쓴다는 것에 내 스스로 하면 안되는 일인 것마냥 느껴졌다.
어느 순간 나에게 던진 물음표의 답을 찾기 위해 고민의 시간을 계속해왔다. 9월 초 정도에 작성해둔 글도 계속 쓰다 지우다를 반복했다. 하고싶은 말이 있는데, 어떤 말을 해야할지 몰랐다. 어떻게 말을 풀어가야 할지를 몰랐다. 초고를 쓰고 지우다를 수차례 반복하다 내가 연재같은 연재같지않은 연재같은 글을 써왔다는 사실을 많은 분들에게서 잊혀지고 있어서(...) 조용히 시간과 정신의 방에서 나를 가두었다.
Scene20. 시장의 열쇠
그동안 나를 방에 가둔 것은 ‘시장’에 대한 성찰이랄까. 뭔가 고귀해보이는 건 그냥 기분탓이다. 마땅한 단어도 생각나지 않는다. 사실 나의 시장탐험은 4화(탐험)에서도, 5화(등잔과 등대)에서도 계속되어왔다.
오랜 고민끝에 통합커뮤니케이션(UC) 시장이라는 걸로 목적지를 잡고 달려왔던 걸로 기억하는데, 실컷 왔더니 여기가 아니란다. 이런 허무함이란 무슨 느낌일까. 꼭 그렇다고해서 틀린건 아닌데, 조금 다른 느낌… 돌겠다. 아니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간 줄 알았다. 그런데 포지셔닝보다는 규모의 경제랄까. 어느 정도가 되어야 덤빌 수 있는 시장인지 고민이 되는 거였다.
그래서 한동안은 만나는 선배님들마다 시장에 대해서, 규모에 대해서 물어보고 다녔다. 멘토링 자리에서 알토스벤처스 한킴 대표님을 만났을 때, 국내 유틸리티 시장은 너무나도 작아서 해외로 진출해야 할 것 같은데, 해외 진출 준비는 국내에서 증명해야하는 모순이 있다며 어떤 시장을 목표로 해야하는지 물어봤었다. 그 때 하신 말씀이 배달의 민족 이야기였다. ‘소수의 가맹점에게 월비용을 받겠다.’라는 작은 목표였고, 그 시장은 너무 작아서 밸류가 낮게 측정됐었다고. 대신 그 다음, 그 다음, 그 다음 스텝에서 더 파이를 키워가고 하나 하나 증명해나가는 것을 보면서 신뢰가 생기고 더 큰 투자를 할 수 있었다고 말이다.
Scene21. 제로 투 원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달 동안 나를 묶고 있던 물음표. 그런 나를 방문을 열고, 이 글을 쓰게만든 건 한 권의 책이다. <제로 투 원 Zero to One>
시장규모를 어떻게 측정하는지도 배운 적 없고, 뭐가 시장인지도 사용자인지도 잘 모르겠는데, 증명과정과 정답까지 뱉어내라는 수많은 사업계획서와 발표자리에서 거짓말인지 진짜인지 모를 진술(?)을 해대며 괴로워했던 지난 시간들이 씻겨내려가는 기분이랄까.
물론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보다는 기존의 모형을 모방하는 게 더 쉽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되는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일을 다시 해봤자 세상은 1에서 n이 될 뿐이다. 익숙한 것이 하나 더 늘어날 뿐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뭔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면 세상은 0에서 1이 된다. 창조라는 행위는 단 한 번 뿐이며, 창조의 순간도 단 한번뿐이다. - 머리말 중에서
그래서 제로 투 원이다. 아무것도 없는 0에서 새로운 1을 만드는 일. 물론 우리 회사가, 내 아이디어가 완전한 무無에서 시작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디어만 모방하는 건 더더욱 아니다. 아이디어를 처음 말하면 때, 듣는이의 8할은 음?하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1차원적으로 판단할때 익숙하지는 않다는 뜻이다. 제품을 보여주면 그제서야 아- 한다. 0은 아니고 한 0.3정도 되는 위치인듯한 느낌적 느낌.
머리말, 그것도 첫 페이지에서 던져진 0과 1, 1과 n 사이에서 나는 한동안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Scene22. 그래서?
시장크기? 모르겠다.
이제까지처럼 자신없어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이제는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가고자 하는 시장은 지금은 없다. 유닛uKnit은 미출시제품으로, 지금은 단 1명의 사용자도 사용하고 있지 않는 서비스다. 출시 후 1명이 사용한다면 1명의 시장일테고 100만명이 사용하면 100만명의 시장일 것이다. 우리가 확보해나가는 만큼, 사용자를 유혹하고 만족시키는 만큼, 시장은 우리 것이 된다. 우리만의 것이 된다. 가보지 않은 길을 마치 가본 것처럼 몇억달러니 몇십만유저니 떠들지 않겠다.
내가 하려는 비슷한 분야를 먼저 걸어갔던 선배나 동료들, 파트너들로 부터 듣는 이야기에서 도출해내는 유닛의 미래가치는 엄청나다. (거짓말 좀 보태서. 제품도, 이 글도 내꺼니까.(하지마)) 내 나름의 인사이트를 누군가의 다른 사람에게서 갑작스레 확인받았을 때의 전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어딜가도 누굴 만나도 꺼내지 않는 10%가 있다. 마지막 카드랄까. 이제는 어떻게 어디서부터 잡아나가야 할지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끝은 모르겠지만, 어디로 어떻게 가야할지는 알 것 같다.
내 필력이 약해 이 느낌을 글로 다 풀어내지 못함을 아까워하며.
첨부.
시장을 찾으려고 읽었던 책들 중..
- 포지셔닝
- 디퍼런트
- 카테고리를 디자인하라
그리고 시장에 대해서 나에게 던졌던 물음표들 중…
- ‘시장’은 존재하는가?
- ‘시장’과 ‘사용자’는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 시장은 존재하지만, 시장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작은가?
- 시장이 있다고 매출이 발생하는가? 무료시장도 시장이다.
- 시장에서 경쟁자가 있는가? 왜 경쟁자인가?
- 대기업들이 포진해있는 시장의 파이를 나눠먹을 생각인가?
- 시장의 파이를 나눠먹지 않고, 나만의 파이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은?
- 내가 만들고 싶은 시장은 어떤 모습인가?
- 내가 시장을 만들면 이후의 경쟁자들은 어떤 모습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