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운 글쓰기 수련법

바로 지난주 토요일, 이상한모임에서 올해의 마지막 99콘이 있었고, 나의 주제는 다시 ‘글쓰기’였다. 제품도 한 줄의 카피라이터로 팔립니다. 라며 글쓰기를 꾸준히 연습하라는 메시지로 마무리 지었는데 발표가 끝나고 한 청중으로부터 어떻게 글쓰기를 연습해야 하는지 질문을 받았다. 나의 대답은 ‘일단 쓰고, 아주 많이 고치고, 소리 내 읽어보기’ 였다. 내 머릿속에 이러저러하게 딱 정리된 하우투가 없어서 일단 떠오르는 키워드 세 개를 대답 드렸는데 다시금 후회가 든다. 글쓰기는 어떻게 연습해야 하는 걸까. 나다운 글쓰기는 어떻게 만들어야 하나. 시원치 않았던 대답에 이 글로 만회할 수 있길 바라본다. 질문하신 분께 이 글이 닿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과거로 돌아가 보면, 나는 글쓰기를 잘하는 편이 아니다. 곧잘 글쓰기를 하곤 하지만, 글은 그냥 쓰는 거지 잘 쓰지 못한다. 맛이 없달까, 표현력이 부족하고 어휘력이 풍부하지 않아 가끔은 초등학생의 어휘력으로 소설을 쓰는 기분이 든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그럭저럭 글을 쓰게 된 계기는 대학교 때 신문사에서 3년간 일하면서 엄청난 훈련을 받았었기에 글쓰기를 시작하는 두려움은 없는 것 같다. 고치다 보면 써지겠지 하는 근자감이랄까.

우리 신문사는 사수가 있었다. 부서를 막론하고 바로 위 기수 선배들이 내가 쓴 글을 검수하고 퇴고했다. 퇴고를 거치면, 다시 검수를 받고 퇴고를 했다. ‘빽’이라고 부르는 과정인데, 피드백(feedback)이거나 빽(go back) 시킨다는 뜻이었던 것 같다. 여하튼, 그 빽 과정은 넘버링이 붙었고 고작 200자 남짓의 단신기사(오는 몇 월 며칠 어디에서 무슨 세미나가 개최된다.~와 같은)의 넘버링은 20~30번까지 가서야 끝이 났다. 고치라는 대로 고쳐오면 ‘피드백대로만 고쳐왔네’ 라거나 ‘고치고 읽어보지도 않냐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라거나. 그런 말을 직접 들을 때도 있었던 것 같지만 벌써 13년은 된 얘기니까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언젠가 했던 얘기 같아서 지난 글들을 뒤져 당신이 ‘글’을 써야하는 이유라는 글을 발굴했다. 세월이 흘러 벌써 5년 전에 쓴 글이다.

글쓰기 수련하기

썰이 길었다. 여기서부터 보셔도 된다. 여기서 말하는 글쓰기는 책이나 서평, 기사와 같은 목적이 있는 문서 말고 블로그 정도의 개인적인 글 정도에 맞는 방법일 것이다.

1. 맥락 잡기

1-1. 글의 흐름을 적어보기

아웃 라이너(Outliner)용 앱들이 꽤 많다. 아웃 라이너란 목차처럼 생기기도 했고, 마인드맵처럼 생긴것도 같지만 어떤 흐름과 맥락으로 글을 흘려보낼지 개요를 작성하는 것이다.

1-2. 일단 글을 쓰기

아웃 라이너가 잡혔으면, 해당 문장에 대한 말을 덧붙여 여러 줄로 늘린다. 글의 양을 늘리는 것은 줄이는 것보다 훨씬 쉽다. (독자를 고려하지 않으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더 많기 마련이니까. 처음부터 잘 쓰려고 고민하다 보면 아예 시작도 못 하게 된다. 특히 모든 글을 완벽하게 쓰려고 하면, 문장은 어찌 넘어가더라도 글이 완성되지 않는다. 완벽한 문장으로만 이루어진 글은 읽기에도 팍팍하다. 그러니, 일단 아무 말이나 쓰고 본다.

1-3. 끝까지 쓰기

대체로 아무 말이나 쓰다 보면 어떻게 마무리를 지어야 할지 모를 수 있다. (나도 항상 그런다) 그런데도 일단 끝까지 쓰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어떻게든 ‘마지막 문장’을 쓴다. 여기까지 와야 이제 글 쓸 준비가 됐다고 본다. 그 전에 중간까지만 쓰다 만 글은 나중에 다시 흐름을 잡고 쓰기가 어려우므로 휴지통으로 항상 흘러 들어간다. 어떻게든 한숨에 끝까지 가자.

2. 조각내기

2-1. 문장 조각내기

신문은 다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판, 베를리너판, 타블로이드판 등 A4 B5처럼 신문조판을 위한 판형의 사이즈가 제각각이다. 어떤 신문 판형을 사용하든, 기본적으로 5~7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신문의 단은 굉장히 좁아서 문장이 길면 여러 줄로 표현된다. 사람이 신문을 읽으면서 문맥을 파악할 수 있는 수준은 2~3줄이고, 그러므로 A4 문서 사이즈로 작성했을 때 1줄을 넘지 않는 선에서 글을 작성해야 한다. 긴 문장은 아니더라도, 줄 수가 많아지면 다음 줄로 넘어가며 맥락을 놓치기 때문에 1줄이 넘어가기 전에 쉼표라도 넣거나 접속사를 써서라도 문장을 조각내야 한다. (별 팁은 아니지만, 문장을 조각내서 앞뒤를 바꿔보면 멋있게 읽힐 때가 있다ㅋ)

PC로 보면 이걸 좀 더 쉽게 확인할 수 있는데, 내 블로그 테마는 너비 960px로 되어있으며 한 줄마다 마침표 혹은 쉼표가 하나 이상 들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블로그에서 1줄 정도의 글을 작성하면 모바일로 봤을 때도 3줄 정도에서 한 문장이 끊어진다. (PC에서 작성할 일이 많을 텐데, 모바일로 보는 방법은 브라우저 인스펙터를 이용하면 된다. cmd+option+i 혹은 크롬에서 보기 > 개발자 정보 > 개발자 도구 죄송하다. 윈도우에선 단축키를 모르겠다.)

어릴 때 신문사에서 글 쓰던 습관으로 계속 글을 쓰고 있을 뿐인데, 폭이 좁은 모바일에서 글을 읽는 일이 많은 요즘에 딱 맞는 전략이 되어버린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인지 블로그의 글을 읽으시는 분 중에는 글의 흐름이 빨라서 읽기 좋다 , 빨리 읽어도 쉽게 읽힌다라는 피드백을 많이 주시는 편이다. 종이신문을 읽지 않는 요즘이긴 하지만, 신문읽기의 호흡으로 블로그를 보고 계신 것을 눈치채지 못하신 분들이 많으신 것 같다.

2-2. 문단 조각내기

2-1에서 문장을 잘 잘라냈다면, 이제 맥락에 맞게 개행을 넣어 문단으로 나눠줘야 한다. 각 문단의 볼륨은 최대한 비슷하게 유지하며, 되도록 하나의 주제로 2~3개의 문단을 구성하려고 노력한다. 4문단까지 가져가면 왠지 TMT 느낌이 들어서인데 이건 개인의 취향이니까 패스. 하여튼,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건 3문단 정도인데 도입-본문-마무리 하기에 딱 좋은 구성이지 싶다. 본문에 할 말이 많은데 4문단이 될 것 같으면 도입1:본문1.5:마무리1 정도로 정리하려고 노력한다.

위 이미지처럼 구성을 잡게 되면, 썼던 문장을 버려야만 한다. 작정하고 글을 쓸 땐, 한 문단의 글자수도 체크해서 300자를 넘지 않도록 강압적으로 조절할 때도 있다. (위 이미지는 331자, 328자, 302자) 물론 사진이나 타이틀 등이 차지하는 영역이 있긴 하지만, 신문에서 1,500자 정도면 종이 지면의 반절 정도를 차지하는 굵직한 칼럼 정도의 분량이고, 3,000자가 넘어가면 전면기사에 가까운 분량이 된다. 요즘엔 스크롤 하니 많아 보이지 않을 뿐이지, 절대로 적은 글 분량이 아니다.

2-3. 타이틀 조각내기

2-2에서 문단의 볼륨을 정했으면, 적당한 주제로 문단들을 묶어서 구성한다. 문단을 하나의 타이틀로 묶을 때는 타이틀끼리의 볼륨도 비슷하게 유지하면 된다. 분량이 비슷하다는 것은 신경써서 구성했다는 의미이고, 어느 주제 하나도 허투로 여기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연습을 하다보면 여기까지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어딜봐서?)

3. 내용 다듬기

2에서 어느 정도 글의 형식과 구성을 이루었으면 이제 본격적으로 내용을 다듬을 때다. 틀을 유지한 채 내용을 다듬는 건 소위 말하는 리팩토링의 단계라고도 할 수 있다. 즉, 통째로 버리고 다시 쓰기도 한다는 말이다. (…) 이 단계의 수련을 도와줄 수 있는 책으로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를 추천한다.

3-1. 종결어미 비교하기

문장을 마무리 짓는 종결어미는 굉장히 다양하다. 생각의 흐름대로 편하게 써 내려가다 보면 ‘~한다.’ ‘~한다.’ ‘~한다.’ 처럼 같은 단어로만 문장을 끝낼 때가 있다. 그래서 그 종결어미를 문맥에 맞으면서 다른 종결어미로 바꿔주는 과정이다. ‘~한다.’ ‘~했었다’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좋겠다.’ 등 생각을 좀 더 넣든지 시제를 넣어 조금이라도 차이를 주든지 한다. 일단 이렇게 1문단을 이루는 종결어미가 같지 않게 바꿔두면 문단을 읽는 데에 지루함이 없다.

3-2. 같은 단어 제거하기

하고싶은 말이 있는 이상 같은 단어를 반복해서 쓰기가 굉장히 쉽다. 영어문법에서 처음에만 ‘명사’를 쓰고 이후에 ‘지시대명사’를 써주는 것처럼 한국어 문장을 구사할 때에도 어느정도의 지시대명사로 문장을 다듬어 주는것이 좋다. 지시대명사가 아닌 형용사, 부사 같은 표현들도 반복하는 것을 최대한 지양한다. 한국어는 지시대명사 같은 거 없어도 맥락에 맞게 자연스럽게 이해되는 때가 많기 때문에 빼버리는게 시원할 때가 훨씬 많다.

  • 아침에 밥을 먹고 출근을 했는데, 아침 밥이랑 같이 먹은 반찬이 상했는지 탈이 난 것 같다.
  • 아침에 밥을 먹고 출근을 했는데, 아침 밥이랑 같이 먹은 반찬이 상했는지 탈이 난 것 같다.

3-3. 문장 주어/술어 확인하기

문장을 이렇게 막 위아래 양옆으로 치고 나면, 문장의 주어나 목적어가 사라졌거나, 주어 목적어와 상관없는 종결어미로 끝낼 때가 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주어와 술어만 읽었을 때 자연스러운지도 확인해본다.

3-4. 맞춤법 검사하기

꼭 하자. 물론 나는 잘 안한다.(…) 하지만 글은 읽어주길 바라고 쓰는 글이어야 하고, 글쓴이에 대한 평가로 이어지기 때문에 왠만해선 하는 편이다.

4. 리뷰하기

4-1. 내가 리뷰하기

마지막으로는 소리 내 읽어본다. 말하는 투가 아니면 굉장히 어색하게 읽힌다. 또 내가 자주 쓰는 단어나, 내가 가진 단어가 아니라 어디서 주워들은 단어라고 한다면 더듬을 정도로 버벅댄다. 어색한 단어를 자연스러운 단어로 바꾸려는 목적으로 읽어보곤 하지만, 되도록 어려운 말을 사용하지 않고 나의 단어들로 글을 쓰려고 하는 목적도 있다. 내가 고급 단어들을 구사할 만큼 배경지식이 풍부하지 않고, 책을 많이 읽지 않아 어휘력도 낮기 때문에 억지로 표현을 끌어오는 것은 맞지 않는 옷을 입는 느낌이 들어서다. 그래서 블로그를 읽는 분들이 나와 만났을 때 혹은 내 지인들이 내 글을 읽을 때 이질감이 없이 받아들이고 자기의 이야기를 잘하시는 것 같다거나 말하듯이 글을 쓰는 것 같다라는 이야기를 해주시곤 하는 것 같다.

4-2. 남이 리뷰하기

3까지 공을 들여서 쓴 글이라면 주위 사람들에게 피드백을 받도록 한다. 자신있고 없고를 떠나서 제3의 관점에서 ‘이건 무슨 말인지 이해되지 않아’ ‘위험한 발언이야.’ ‘이건 쓸데없는 말인 것 같아’ 등 다양한 피드백을 받아 마무리를 짓는다. 베타 리뷰의 피드백을 받을 때는 처음으로 돌아갈 수도 있음도 각오해야 한다. 왜냐면 인터넷 세계는 너무 조리돌림이 쉬운 곳이고, 그렇게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게 되면 다음 글을 쓰는데에 주저함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벌써 몇 년 째 블로그 글을 계속 쓰다 보니, 이제 하나의 주제로 더 긴 호흡의 책을 써보고 싶단 욕심이 든다. 아직 도전해보지 못한 미지의 분야다. 2020년에는 꼭 도전해보고 싶다.
어쨌거나 이 글은 1,269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문장을 쓰면서 1,280자가 되었다. (but, 글자수는 툴마다 다르고 계속 글을 조금씩 바꾸고 있어서 글자수는 안 세보셔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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