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자가 다니기 좋은 회사가 따로 있을까?

얼마전 팀 동료 개발자들과 수다를 떨다 나온 이야기다. 기획자가 다니기 좋은 회사가 따로 있을까?

사실 나는 불필요할 정도로 회사를 많이 옮겼고, 늘 일을 잘 못한다고 생각했었다. 연차가 낮았던 주니어시절에는 일을 못하는 걸 떠나서 자존감부터 낮은 상태라, 기획자로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던 것 같다. 돌이켜보니, 일을 못하는게 아니라 맞지 않았던 회사들이었다. 회사를 옮기면서 느낀 거지만, 개인의 차원이 아닌 기획직군이 일하기 좋은 환경을 가진 회사가 있더라.

그래서 어디?

일단, 좋은 리더가 있는 회사다. 기획자는 업무 특성상 가장 먼저 시작하는 직군이다. 비록 아는 것이 없고, 역량이 부족하고, 퍼포먼스가 낮더라도 거의 대부분의 프로젝트를 가장 먼저 시작하는 사람들이다. 달리기 계주에서도 1번 주자가 스타플레이어가 아니듯이, 최고의 기획자가 배치되지 못할 수 있다.

무엇이 ‘좋은 리더’를 판단하는지 사람마다 또 많은 생각이 있겠지만, 방향성을 제시하지 못하거나 제 때, 혹은 제대로 된 디렉팅을 하지 못하는 경우는 좋은 리더선상에서 제외되는 것 같다.

요즘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HBR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아티클 Top 5이자 반드시 읽어야 할 리더쉽 아티클 Top 10으로 선정된 <What Leaders Really Do> management와 leadership이 서로 어떻게 다른지에 관한 글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을 발견했다. (트위터 땡큐!)

The equivalent leadership activity, however, is aligning people. This means communicating the new direction to those who can create coalitions that understand the vision and are committed to its achievement.

비전과의 align(얼라인이란 말 말고 대체할만한 무언가가 있었으면 좋겠다. 정렬밖에 생각이 안나)이 잘 되지않거나 기획자마저도 이해시키지 못하는 리더 밑에서 가장 먼저 일을 시작하게 되면 불안감과 자기 불신속에서 일하게 되고, 결국 전체적인 프러덕트 퀄리티가 낮아지게 되는 결과를 낸다. 계주에서 잘못된 스타팅이 전체 경기의 흐름을 망치듯, 리더의 잘못된 사인은 첫번째 주자인 기획자가 좋은 플레이를 펼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럴 땐 플레이어 탓을 하는게 맞을까, 잘못된 사인을 준 사람을 탓하는게 맞을까. 하지만 이런 경험들이 반복되면, 리더에 대한 불만보다 자기 자책을 하는 경우로 이어진다. 결국 자존감이 낮아지고 나는 기획자 자격이 없나봐 의 상태에 이르게 되면 개인의 커리어 전체에도 좋지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두번째는 훌륭한 팀장(매니저, 관리자)이 있는 회사다. 직속 상사가 리더가 아닌 이상,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관리하에 일할 수 밖에 없다. 기획의 역할이 많은 의사결정을 하는 것인데, 기획자가 어떻게 결정하든 그냥 놔두고는 그 책임이나 비난을 기획자가 받게되는 경우가 있다. 아무리 결정한 사람이 책임을 진다지만, 사안에 따라 책임의 무게가 다르고 일개 기획자가 그 무게를 질 수 없는 상황이라면 직접 결정을 메고 갈 수 있는 팀장이어야 한다.

책임을 운운하는 경우는 좋지 않은 상황이 발생한 경우지만, 보통 이런 성향의 팀장이라면 기획자가 훌륭한 성과가 냈을 때에도 그 업무의 공을 치하해주지 않을 확률도 굉장히 높다. 성급한 일반화일지 모르겠으나, 잘한건 내가 잘한거고, 못한건 네가 책임져. 라는 팀장을 나는 너무 많이 봤다.

그래서 입사하기 전에 가능하다면 팀의 직속 팀장이나 매니저의 레퍼체크를 꼭 하라고 당부하고 싶다. 구직자의 레퍼첵은 당연한 분위기인데, 역레퍼첵에 대해서는 다들 무신경하다. 나는 입사하기 전에 직속 상사가 어떤 사람인지 지인들을 동원해 꼭 물어보고, 입사하고 나서도 동료들에게 꼭 물어본다. 어차피 전배를 하거나 퇴사를 할 생각이 아니라면, 상사의 성향에 대해 잘 이해하는 것에 따라 내 업무환경이 많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한 방향을 가르키거나 제대로된 디렉팅을 하지 못하는 리더나 남의 공을 자기 공으로 돌리고 자기 책임을 남에게 돌리는 체리피커 매니저 밑에서 일하는 기획자는 아무리 좋은 프로덕트가 있고, 든든한 개발동료들이 있어도 기획자로서의 역량을 키울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잘해보고 싶어 수많은 날을 고군분투하는 수많은 기획자 분들게, 그 회사가 아니면 더 많은 성장과 더 큰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전하며 글을 마친다.


PS. 유튜브 시작했습니다. 선 유튜브 후 블로그. 이제 유튜브 채널도 구독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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