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자의 페르소나

기획자를 둘러싼 수 많은 질문이 있다.

어떤 기획자가 되어야 하나 묻는다. 기획자가 뭐하는 사람인지 묻는다. 기획이 무엇인지 묻는다. 기획자는 뭘 공부해야 하는지 묻는다. 많은 사람들이 기획자는 이래야한다 등의 이야기들로 직군을 정의하지만, 여전히 기획자라는 역할과 책임에는 여전히 물음표가 많은 상태다. 국내에만 있는 직군이라는 무시부터 아무나 기획을 할 수 있다는 무시도, 그리고 기획자는 필요없다는 무시까지.

기획자를 둘러싼 무존중은 존재하는 수많은 기획자들이 하루 하루를 감정노동 속에 살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열정에 임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기획자에 대한 그렇다할 롤모델이 없는 상황에서 저런 숱한 질문을 물어볼만한 선배가 흔하지 않다는 것은 오늘의 현실적인 문제를 극복하는 것을 더디게 한다.

당신이 생각하는 기획자란 무엇인가?

좋은 기획자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 쉽게 정의내리고 채점할 순 없겠지만, 기획자라는 말을 들었을 때 머리속에서 떠올리는 무언가의 그림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걸 페르소나라고 불러왔다. 사용자의 페르소나. 그것을 기획이라는 직군에 얹어보면 어떨까?

역할(Role)의 측면에서 기획을 분석하면,

  • 사용자 경험을 디자인하는 역할
  • 인터렉션과 UI를 디자인하는 역할
  • 요구사항을 분석하고 스펙을 정의하는 역할
  • 데이터를 분석하고 옳은 결정을 내리는 역할
  • 유관자와의 협의나 협상을 통해 의견을 조율하는 역할
  • 리서치 등을 통해 사용자의 불편을 파악하고, 개선하는 역할
  • 이해하기 쉽게 사용자에게 설득/설명하는 역할
  • 요구사항(Backlog)를 관리하여 확장가능하도록 기획하는 역할

책임(Responsibility)의 측면에서 기획을 분석하면,

  • 출시하는 서비스의 퀄리티를 책임
  • 비즈니스 타이밍에 맞게 일정을 책임
  •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질 이슈들을 책임
  • 요구사항과 기획서 등의 문서가 최신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관리
  • 전체적인 프로젝트의 누락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망하는 책임

이 정도로 정리해본다면, 회사에서 어떤 일(R&R)들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당연히 조합해보면 기획자가 하는(또는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보니 해내야 하는 수십가지 패턴이 나올 것이다.

실제로 내가 소속돼있는 팀의 기획자 채용JD는

  • 오프라인&온라인 사업부의 비즈니스 요구사항 분석
  • 신규 기능정의 및 상위 정책 기획
  • IA(Information Architecture) 정의 및 User Flow 정의
  • UI 및 UX 인터렉션 정의
  • Sprint 프로젝트 일정과 Jira 이슈의 관리
  • Confluence를 통한 문서화

그리고 오늘 우리팀 실장님이 회사 슬랙에 올린 우리팀 기획자가 하는 일은
(정확한 워딩은 PO/PL이 Project 당 하는 업무 full process)

  • 각종 회의
  • 상위 기획
    • 요구사항 수집 & 사전 분석
    • 기능 정의서 & 명세서 작성
    • JIRA Task 및 story 분류
    • 상위 기획 리뷰
    • 데이터 분석 및 KPI 설정
  • 세부 기획
    • UX 리뷰 (디자인, UT)
    • 유관 부서 기획 리뷰
  • UT
    • UT 요청서 작성
    • UT 시나리오 작성
    • UT 모더레이터
    • UT 결과 기획 보정
  • 개발
    • 개발팀 리뷰
    • 개발 f.u
    • API 및 확인
    • 개발 완료 check
    • 데이터 로그 설계
  • QA
    • QA 요청서 작성
    • QA 리뷰 & 일정 협의
    • TC 리뷰 받고 협의
    • sanity test
    • QA 결과 issue check 및 f.u
    • QA 개발 개선 f.u
  • 배포 체크
    • 라이브 모니터링
    • 런칭 공지 및 유관부서 알림
  • 라이브 케어
    • 유관부서 추가 이슈 대응
    • 데이터 결과 분석

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거 보고 한참 웃었다. 이렇게 하는 일이 많았나싶다. 이걸 어떻게 다하냐 뻥치지 마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래서 기획자 뽑는다. 이력서는 [email protected] 로 받는다.

당신이 되고싶은 기획자란 무엇인가?

이 질문은 굉장히 중요하다. 남이 어떤 기획자가 좋다한들, 어떤 기획자가 인기가 많다 한들, 그것이 당신의 몸에 맞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효과가 없다. 능력도 없다. 다 할 수도 없다. 그러니, 당신이 되고 싶은 기획자를 구체적으로 설정하고, 그것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공부해야한다.

위에서 언급한 기획자의 R&R만 가지고도 되고 싶은 기획자의 페르소나를 설정할 수 있다.

  • 데이터를 보고 의사결정을 하는 = 데이터 분석
  • 사용자의 불편함을 파악하는 = 사용성분석
  • UI와 인터렉션을 디자인하는 = 와이어프레임, 프로토타이핑
  • 스펙을 정의하고 백로그를 관리 = 요구사항 분석
  • 이슈를 관리하고 일정을 맞추는 = 프로젝트 매니징
  • 백로그를 관리하고 퀄리티를 책임지는 = 프로덕트 매니징

그리고, 여기에 누구와 함께 일하는지와 카운터파트너(Counter patner, 반대편의 협력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좀 더 알아야 하는 도메인 지식이 달라지고, 어떤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가져야 하는지가 달라진다. 그럼 커뮤니케이터로서 기대하는 기획자의 역할도 만족할 수 있다.

답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답은 책에서 찾자. 키워드 몇개만 알면, 그 쪽 분야에 대해서 빠득한 지식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 키워드를 찾는 일을 책에서 하길 권한다. 지금 일하는 분야와 조금이라도 관계있는 책이라면 몇 권이라도 읽어 보길 추천하며, 한 권의 책에서 모르는 단어 10개와 더 알고 싶은 단어 1개만 찾을 수 있다면 책값은 아깝지 않다. 모든 책을 꼭꼭 씹어먹을 필요는 없으니 가볍게 읽어보자.

그리고 내가 일하고 있는 회사에서 찾자. 회사는 쉽사리 공개되지 않는 데이터들과 각종 분야의 경력자가 넘쳐나는 곳이다. 현재의 회사에서 나의 커리어를 완성할거란 기대는 하지말고, 다음 이직을 위한 준비를 하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회사생활이 즐거워지기까지 한다.

최근에 나에게 커리어상담을 한 3년차 이하의 주니어에게도 똑같은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 회사 평생다닐 거 아니니, 이직할 때 이력서에 쓰고 싶은 일을 지금 회사에서 찾아서 하라고. 그 일이 본격적이지 않더라도, 작은 경험이나마 실무에서 해본다는 것은 매우 큰 점수를 받을 수 있다. 특히 연차가 낮아 책임져야 할 범위가 작다면, 상사나 동료에게 말해 원하는 업무를 할당받기가 더 쉬울 수 있으니 그 점을 활용하자. (연차 높으면 남 주기 어려운 일이 많다..) 주어지는 일만 하다보면 내가 원하는 기획자의 페르소나와 멀어지기 쉽고, 그럼 이 일로 먹고살 자신이 없어진다. 자신감을 잃은 기획자는 다른 이를 설득하기 어렵다. 악순환이다.

마무리는

아 요새 글을 너무 안썼더니, 마무리가 불가능하다. 항상 그랬지만, 오늘은 진짜 여기서 끊을 수 밖에.

적게 일하고 많이 버는 법을 늘 고민합니다. 일이 되게 하는 것에 간혹 목숨을 겁니다. 지금은 우아한형제들과 함께 일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