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안 기획자가 되지 말라.

오랜만에 글을 쓴다. 글을 쓸만한, 그리고 글을 써야 하는 글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예전부터 쓰려던 글이었지만, 쓰게된 타이밍이 아웃스탠딩 기사(왜냐면 우리가 원하는 사람은 입기획자가 아니거든)에 대한 반박이 된 것 같기도 하다. 반박글이라고만 하면 왠지 날선 글이 될 것 같으니, 다른 생각에 대한 글이라고 해두자. 포장은 또 기가막히게…자 이제 트래픽 주세요.

우선 기사 본문에서의 기획자는 ‘앱을 기획한다’는 것 같으니, 이 글에서 지칭하는 ‘기획자’는 앱기획자로 한정하고 유관부서는 UI디자이너와 클라이언트 개발자로 한정을 하겠다. (..나네?)

경력자인가 실력자인가

경력이 많으면 실력이 좋은 것인가? 실력이 낮으면 경력도 짧은 것인가? 실력이 좋으면 경력도 높게 쳐주는가? 미안하지만 이 기획자라는 바닥은 그렇지 않다. 경력에 기대기 마련이고, 실력은 남들보다 퇴근을 좀 빨리 하거나 같은 시간동안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있을 정도의 메리트만 있을 뿐이다. (실력이 좋으면 다른 부서사람들과 덜 싸울 수 있는 메리트도 있다.)

사실, 기획자의 실력을 평가할 객관적인 지표가 없다. 기획서의 표준도 없고 회사의 표준이 있을 뿐이다. (한 술 더뜨면, 그냥 PPT 템플릿이다) 산출물의 종류는 정해져 있는 편이지만, 어느 수준의 레벨로 산출물을 뽑아내느냐의 차이때문에 그조차도 객관적이지 않다. 무엇보다 아무리 기획을 잘 한다 한들, 디자이너의 디자인과 개발자의 도움이 없다면 제대로 된 프러덕트를 뽑기가 더 어려워 진다. 회사에 의해 혹은 외부 환경에 의해 휴지조각이 되어버린 기획서로 탑을 쌓으면 태백산맥 정도는 되지 않을까.

그러니, 처음 보는 사람에 대해 평가할 객관적인 업무 평가 지표라곤 이 바닥에서 몇년 굴러먹었다(=못볼꼴도 좀 봤겠군)뿐이라서 그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할지라도 점수를 쳐 줄 수밖에 없다. 이는 마치 취준생의 토익점수와도 같은 거라서 영어실력이 바닥이라도 최소한 해본건 있네라거나 얼마큼 노력했겠구나 하는 정도랄까.

에반젤리스트가 나쁜가

여기서 좀 웃고가도 될런지. 하하하. 기획분야에는 ‘에반젤리스트’라고 불러줄 사람 자체가 거의 없다. 손에 꼽는다. 잘나가는 컨설턴트, 스타트업 멘토, 교수 등은 많아도 실무에 몸담고 있으면서 ‘에반젤리스트’를 할만한 기획자는 정말로 손에 꼽는다.
에반젤리스트의 정의는 “해당 기술이 무엇인지, 어떻게 사용될 수 있는지, 얼마나 뛰어난 성능을 가지고 있는지, 앞으로 이 기술이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 전파하고, 해당 기술에 대한 사용자의 의견이나 애로사항을 수렴해서 해결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 주는 사람” 정도로 정의된다.

기술 자체에 대해서 깊이 파고드는 기획자는 아키텍트에 가깝고, 디자인에 대해 깊이 파고드는 기획자는 UX디자이너에 가깝고, 사용자에 대해 깊이 파고드는 기획자는 커뮤니티 매니저에 가깝고, 사용자 지표에 대해 파고드는 기획자는 데이터사이언티스트에 가깝다. 기획이란 분야 자체가 얇고 넓다보니 ‘기획’ 그 자체에 대해서 혹은 그 업무 프로세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다. 개발자 컨퍼런스를 다 뒤져봐도 기획업무나 앱기획에 대해 강연하는 것은 몇년째 전멸이다.
그래서 이 단어는 기획자 사이에선 자주 쓰이지 않는 단어인데다가, 개발자 디자이너 등 진짜 에반젤리스트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그저’ ‘실무는 모르는’ ‘입만 산’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정말 무례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들이 없으면 12시까지 야근할 걸 새벽 6시까지 야근하게 되는 상황도 발생하는 거고. 모두가 그렇게 학습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누군가는 먼저 공부하고 누군가는 먼저 정리하고 누군가는 먼저 말해야 한다. 그런 정제된 정보들을 영양제처럼 받아먹고 실무하는 사람들이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외국에는 그런사람들의 밸류에이션을 굉장히 높게 쳐주는데, 여기는 헬조선이라 ‘그저 입만산 실무모르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인가.

외부모임에 나가면 안되는가

“외부모임 한번 나갈려면 반나절을 날려야대. 사업하는 사람이 그럴 시간이 있냐는 말이지”

표현 자체가 맘에들지 않지만 전문을 인용한다. ‘앱기획자’를 구인하는 데 왜 ‘사업하는 사람’을 찾는 것인가. 그건 차치하고서라도. 여기서 말하는 외부모임은 동창모임같은게 아니다. 컨텍스트 자체가 ‘업계에서 유명한’ 즉 ‘업계모임에 자주 출현하는’ 이라는 의미로 해석되니 아마 ◎◎세미나 라거나 ♢♢컨퍼런스 연사, △△네트워킹데이 등에 나가는 사람들이겠다. 내가 사업을 하면서 외부활동이 독이되었던 이야기를 쓴 적이 있으니, 저 문장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공감은 한다.

“으이그. 한번 생각을 해봐라. 진짜 바쁘고 잘 나가는 사람은 외부모임에 나갈 시간이 없어. 간신히 거절 못할 자리에 얼굴 비추는 식이지”

하지만, 외부모임에 나가지 않는 사람이 좋은 기획자인가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진짜 바쁘다라는 의미는.. 음.. 매일같이 12시까지 야근하는 사람을 말하는가? 누가 불러도 나가지 않고 회사에만 충성하는 개를 원하는 것인가?
기획자는 밖으로 나가야한다. 나를 위한 프로덕트가 아니라 사용자를 위한 프로덕트를 만들기 때문에,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말하는지 듣고 보고 배울 필요가 있다. 업계 사람들만 만나더라도 어떻게 하면 더 좋은 프로덕트를 만들 수 있는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기획을 하는지, 어떤 개발자들은 어떻게 생각을 하고있는지 듣고. 보고. 배울. 필요가. 있단. 말이다. 모임에 나오면 내 비즈니스모델이나 플로우가 무엇이 잘못되고 있는지, 그 버튼의 그 텍스트는 왜 그렇게 써야하는지 치열하게 생각하고 말하는 고통의 시간을 건널 수 있다고. (PS. 물론 회사에서만 일하는 걸로도 셀프득도해서 실력이 넘쳐흘러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니 꽤 많다. 그런 사람들도 많이 알고 있다. 하지만 당신이 그런 사람일거라는 생각은 접어두는게 먼저일지도 모르겠다.)

외부 활동을 하지 않는 기획자들의 단점은 내가 기획자고, 기획한거니까 그냥 해줘요라는 하는 것이다. 왜 맞는지에 대해서 왜 옳은가에 대해서 왜 그렇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당위성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를 말한다. 물론, 모임에 나온다고 그런걸 찾을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모임에서 서로의 사례로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나 경험을 알 수 있다는 것은 0에서 1의 영역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폭제는 될 수 있다.

글을 마무리하며

글을 계속 쓰자니 계속 표현 하나, 단어 하나에 딴지를 걸게 되는 것 같아서 할말 다 해놓고 오늘은 여기까지만 써야할 것 같다.
아웃스탠딩 기사를 계속 보고있고, 스타트업을 위한 독립미디어로서 잘 되길 바라지만. 업계의 카더라만 모아서 소설같은 기사를 써서 실무에 있는 사람들의 기분들을 상하게 하는 것은 무엇을 위함일까. 이 쯤되면 그 ‘입기획 모임’같은 곳이라도 참여해보긴 한 것인지……

앱 & 서비스 기획자입니다. 잘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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