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모임에 대하여

사람들이 어떤 커뮤니티냐고 자꾸 묻는다. 벌써 2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여전히 묻는다. 모임이라는 단어에서 자꾸 계 모임이라던지 동호회라든지 그런 게 연상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차치하고서라도.

아무것도 안 하는 아무것도 아닌 모임이라고 이야기하면 그게 뭐냐고 다시 반문한다. 그게 지쳐서 이젠 개발자 커뮤니티라고 얘기하고 다니기도 한다. 하지만 의미가 없는 게, 개발자들이 많을 뿐이지 프로그래밍에 대해 공부를 하는 스터디모임도 아니기 때문이다. 개발의 ㄱ도 모르는 나도 이 모임에 있고, 전혀 다른 분야의 사람들도 모여있다. 평균비율은 개발자 85% 나머지 15%. 보그체로 표현하면 디벨로퍼 프렌들리 커뮤니티쯤? 동종업계긴 하지만, 분야를 막론하고 이들이 모이는 이유는 아무 목적 없는 편한 모임을 바라서 일 거라 생각한다. 눈치 안 보고 잉여 잉여 할 수 있는 곳. 요즘은 마피아게임에 다들 빠져있다

시작은 이러하다

2년 전 여름, Coursera(MOOC)에서 Startup Engineering 이라는 강의를 듣는 사람들이 있었다. 트위터에서 여러 사람이 같은 강의를 수강하길래 나도 껴달라고 했다. 뭘 배우는지는 몰랐지만, 같이 뭔가를 해본다는 (자기계발) 것에 매력을 느껴 함께했다. 대여섯이 모여 각자 수강을 하고, 진도를 체크하는 경험은 수업을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새로운 형태의 성취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온라인에서 그렇게 만난 사람들이 생겼고, 나는 좀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 했다. 네이버 Deview나 다음 DevOn 같은 행사마다 다니면서 트위터에서 팔로잉하고 있던 개발자들을 찾아다니며 첫인사를 나누었다. 연말이 되고, 나는 그 사람들이 다 같이 모여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트위터 송년회라는 목적으로, 나는 알고 서로는 모르는 20명의 사람이 모였다. 다 같이 팀블로깅이나 해보면 재밌겠다는 얘기에 다섯시간 만에 블로그가 생기기도 했다.

IMG_3233▲ 2013년 12월 15일. 트위터 송년회

이상한모임은 우발적인 모임이었다.

운영진이 주최하고, 회원들이 참여하고 그런 모임이 아니다. 흥미로워 보인다며 참여하는 사람들이 생겨난 만큼, 자기와는 맞지 않는다고 빠져나가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카페에서 각자 할 일하고 갈 때 되면 일어나는 쿨한 모임이었지만 낯선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은 분명 있었다. 아무리 독려를 해도 안 나오는 사람들은 안 나온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하나, 둘, 관계를 맺어갈수록 그들 사이에서의 시너지는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회사에서도 말 통하는 동료 없이 일하던 개발자들이 마음을 열고 속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물어볼 사람이 없어 끙끙대던 주니어들도, 사람을 관리해야 되는 시니어들도 그렇게 자신의 불만족스러운 부분들을 모임에서 해소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커뮤니티의 형태로 일어나는 시너지의 맛을 지켜보는 일은 훨씬 더 힘든 일이었다. 이거 참 좋은데, 뭐라 할 말이 없네... 딱 그거.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커뮤니티를 키워나가기로 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커뮤니티는 게시판이 주렁주렁 달린 네이버 까페 같은 곳이다. 하지만 개발자 커뮤니티는 스터디 위주로 형성되고, 만나서 친해지고 소규모로 운영되곤 한다. 그냥 목적 없이 이곳저곳의 카페에서 모일 수 있으려면 커뮤니티의 규모는 충분히 커야 했다. 홍대 갔는데 불러낼 친구, 판교 가서 불러낼 친구... 어딜 가도 같이 일할 사람들이 있으려면 규모는 클수록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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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것도 개발하지 못한 비운의 1기 운영진 발대식

다음 스텝을 생각하다

많은 커뮤니티를 보고, 분석하고, 생각하고. 그러면서 개발자 커뮤니티로 탈바꿈한 2015년이 되면서 가진 모토중에 하나는 지속 가능한 커뮤니티가 되자이다. 소규모 커뮤니티의 단점은 새로운 회원이 들어올 틈이 없어 커뮤니티가 그대로 늙어간다는 것에 있었고, 어딘가의 지원을 받는 커뮤니티라면 지원이 끊겼을 때 자립할 힘이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엔 사람이고, 결국엔 돈이었다.

사람을 해결하기 위해 계속 홍보를 한다. 교육도 열고, 세미나도 연다. 새로운 사람들에게 지식과 노하우를 나눠줌으로써 호갱을 확보...가 아니라 새로운 회원들을 유치하는 과정들이다. 세미나나 교육 이후에 참가자의 10% 이상이 새 회원으로 유입된다.

돈을 해결하기 위해 수익화를 계속 시도하고 있다. 자체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려고 온갖 실험들을 한다. 소규모 실험도 하고, 대규모 실험도 한다. 월정모가 실험이었고, 백 명 규모의 세미나도 실험이었다. 수백 개의 기념품과 모임 여권을 만든다는 것도 실험이었다. 실패한 것도 있고, 성공한 것도 있다.

이제는 정기적으로, 그리고 꾸준히 모일 수 있는 아지트를 만들어보려고 하고 있다. 20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공간. 테이블도 놓고, 빈백같은것도 가져다 놓고 반 누워서 작업해도 편안할 공간. 휴일과 명절에 카페 오프와는 상관없이 24/7 일할 수 있는 공간. 주인도 매니저도 없이 회원제로 회원들이 운영하는 학관 꼭대기 층 동아리방 같은 곳. 이름은 A git(아-지트)으로 지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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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5월 30일 글쓰기세미나

칼자루를 쥐고 있다.

글을 이만큼 쓰고 보니 주제가 뭐였는지 가물가물하다.

이상한모임 사람들은 나를 이모라고 부른다. 이상한모임을 줄여서 이모라고 부르는데, 나를 이모라고 부른다는 건 그만큼 권한, 책임, 의무가 있다는 얘기다.

커뮤니티가 회전할 수 있는 구심력을 얻기 위해서 중간에서 끌어당기는 원심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희생을 해야 발전할 수 있으니 하루에 두 세 시간씩, 잠자는 시간 줄여가며 주말에도 상관없이 모임과 관련된 일들을 한다. 밤을 새울 때도 있고, 휴가를 내면서까지 일하는 날도 (손에 꼽지만) 있다. 중심축이긴 하지만, 내가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도 안다. 커뮤니티 자체가 나에게 기대고 있다는 것도 안다. 가끔은 너무 부담되어 내려놓고 싶을 때도 있다. 나도 직장인이고 아침 9시에 출근해서 7시까지 일을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시도 때도없이 요청하고, 요구한다. 나도 사람인데 쉬는 날도 있어야 되는거 아닌가, 너무 몰라준다 싶은 생각에 욱할 때도 있다. 돈이라도 넉넉히 벌면 좋을 텐데, 적자 때문에 허덕이고 있기도 하다. (...)

커뮤니티 활동을 수년간 해온 분들은 쥐고 있는 걸 좀 내려놔야 한다고들 경고한다. 한 사람의 희생으로서 굴러가는 조직은 언제든지 멈추거나 깨질 수 있으니까. 나도 스스로 경고하고 곱씹는다. 권력의 분산이라는 목표를 위해 운영진도 뽑고 어떻게든 나누려고 애쓰지만... 일을 시키는 것조차 일이지 않나. 그래서 지금은 혼자서라도 실험을 계속하고, 실험에 성공하면 안정적으로 운영할 사람을 찾아놓는다는 것이 계획이긴 하다.

하여튼 핑계는 됐고, 그런데도 내가 계속 이 일을 하는 이유는.

아직은 원하는 규모가 아니고, 원하는 영향력을 가진 커뮤니티가 되지 않았고, 아직 지속 가능한 상태가 아니기에 내가 손을 놓으면 모든 것이 멈춰버릴 것 같단 생각이 들어서다. 손 놓고도 안정궤도에 올라갈 수 있을 때까지 몇 기의 운영진이 희생될지 모르겠지만, 자리를 잡으면 나도 회원으로 소소하게 활동하고 싶다. 제발!

내가 이상한모임을 나타낸다고 생각하는 영상을 끝으로 글을 마치려고 한다. (워낙 유명한 강연이라 한 번씩은 봤을테지만.)

집단은 뉴스거리죠. 운동이란 건 대중적이어야만 합니다. 리더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추종자들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죠. 새로운 추종자들은 리더가 아닌 추종자들을 따라 하기 때문이죠.
여기에 두 명의 사람이 더 오고, 바로 뒤에, 세 명의 사람이 더 붙습니다. 이제 가속도가 붙게 되죠. 이게 바로 전환점입니다. 결국, 하나의 운동이 됩니다. 알아차리셨겠지만, 많은 사람이 참여할수록 덜 위험합니다. 그래서 그전까진 방관하고 있던 사람들도,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는 거죠. 돋보이지도 않고 조롱거리가 되지도 않습니다.

이상한모임은 지금 전환점이라고 생각한다. 커뮤니티의 확장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매주 40명 정도의 사람이 새로 가입한다. (물론 이탈도 만만치 않다) 많은 사람이 참여하니 우리는 이상하지 않다. 혹시라도 지금껏 이상한모임이 이상해 보여서 참여하지 않았다면,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다.

덧. 믿기 어렵겠지만 숙제로 쓴 글이다.

이상한모임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주제로 함께 글을 쓰는 글쓰기 소모임입니다. 함께 하고 싶다면 #weird-writing 채널로 오세요!

적게 일하고 많이 버는 법을 늘 고민합니다. 일이 되게 하는 것에 간혹 목숨을 겁니다. 지금은 우아한형제들과 함께 일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