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에 대하여

나는 주의산만한 편이다. 초등학교 생활기록부에는 ‘주의가 산만합니다’라는 선생님 평가가 늘 적혀있었다. 고민하던 엄마는 서예같은 걸 가르쳐볼까 하셨지만, 내가 그런걸 배울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한가지만 하기엔 삶이 너무 재미없달까. 라는 걸 어린 나이에 생각할 정도였으니.

꽤 머리가 큰 학생 때에는 몰입보단 잠이었다. 빠지면 어찌나 정신을 차리기가 힘든지. 하루에 13시간씩 자면서 학교는 어떻게 다녔는지 모르겠지만, 아침에 출석하면 점심때 밥먹고 또 졸다가 청소시간에 깨고 다시 자다가… 눈이 반짝반짝해진 야간자율학습시간에 하루치 공부를 몰아서 하곤 했다.

대학생(성인)이 되어서는 일중독 상태였던 것 같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강제하는 일정과 틀 속에서 나를 조이며 생활했다. 학교 공부가 너무 어려웠고 적성에도 맞지않아 힘들었기에 캠퍼스 생활의 도피처로 일을 선택했던 것 같다. 성적이 좋지 않으면 일하면 그럴 수 있지라고 자신있게 핑계대던 사람이었다.

회사를 다니기 시작하고, 나의 커리어라는 것이 생길 때 즈음. 나는 몰입에 대해 인지하기 시작한 것 같다. 예전엔 좋아서 그것만, 혹은 다른 대체제가 없어서 그것만해도 되는 상태였다면. 지금은 내가 할 수 있고, 해야하는 수 많은 것들 중 하나에 집중하는 상태를 만들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 몰입하는가

나를 몰입상태로 만드는 것은 가장 먼저 자기만족이다. 일중독이란 표현을 쓸만큼 뭔가 퀄리티있는 산출물이 나올 때까지 계속 매만지는 것이다. 그것이 짧게는 3-4시간, 길게는 이틀까지도 이어진다. ‘이만하면 어디가서 꿀리지 않겠지’라는 생각이 들 때까지는 계속 잡고 있다.
두 번째는 책임감이다. 자기만족과 백지장 한 장 차이이긴 한데, 이 일을 할 수 있는 역할이나 사람이 오로지 나밖에 없을 때, 고도의 몰입상태에 빠진다. 어디서의 리더가 아니고 말단사원일지라도, 짜친 일을 할 사람이 나밖에 없을 때 집중하게 되는 것 같다.

이 두가지 상태가 완벽하게 맞아 떨어질 때는 바로 데드라인을 만났을 때다. 일주일동안 해도 안되던 일들은 데드라인을 만나면 24시간동안 사용가능한 몰입상태가 된다. 최근엔 체력적으로 받쳐주지 않으니 아침 6시쯤 되면 억지로 잠을 청하긴 하지만. 이런 텐션을 갖게된 건 철없던 시절의 사건&사고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걸지도. 대신 이 상태로 몰입이 해제되면, 한동안은 아무것도 집중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머리가 울릴 정도로 몰입하는 상태기 때문에 상태가 해제되면 잠복기에 빠진다.

나는 언제 몰입당하는가

조직의 일원으로서 업무상태만 한정한다면, 첫째는 커뮤니케이션이 빠를 때다. 틀려도 되고, 정확하지 않아도 좋다. 주고받는 피드백이 빨라질수록 집중도는 높아진다. 틀린 것이 있으면 바로 잡아내서 수정해나갈 수 있는 상태. 직업이 기획자다보니 입기획과 입개발이라고 칭하는 것들이 되기도 하는데 누가 옆에서 닥달하는 상태여도 동일해진다. 피드백이 느리면 한 여름 엿가락 늘어지듯 쭉-….

두번째로는 조직의 목표나 서비스의 방향이 명확할 때다. 남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든 지금은 각자의 레일에서 전력질주 한다는 느낌이 확실하기 때문일까. 그 상태에서는 팀원들을 무한신뢰하는 상태가 된다. 옆에서 게임을 하든 꺄르륵 거리며 놀든 내가 달려야 같은 목표를 달성하게 되고, 그것을 달성하게 하는 것 자체가 개인의 목표가 되기 때문이다.

세번째로는 하기싫은 일이 있을 때인 것 같다. 대체로 두가지 양상으로 나뉘는데, 하기싫은 일을 빨리 해치우고 싶어하는 경우와 하기싫은 일과 그냥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때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이건 좀 고치고 싶은데, 여전히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싫은 일의 도피처로 만들어 버리는 것 같다. 워커홀릭이 일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풀려고 다른 일을 하는 그런 느낌이랄까.

나는 언제 몰입에서 해제되는가

일반적이지는 않겠지만, 주위 사람의 기분에 좌우되는 것 같다. 누군가의 언성이 높아지거나, 얼굴빛이 좋지 않을 때. 무슨 걱정이 있는걸까. 하고 신경이 쓰이게 된다. 평소엔 남이사 어쩌든…의 상태지만, 이렇게까지 신경을 쓸 때에는 내 기분도 그닥 좋지는 않은 상태이다. 내 기분이 좋다면 신경질을 부려도 그런가보다 하고 웃어넘길 수 있는데, 컨디션이나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면 서로 부딪히거나 긁을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사람간의 관계에 조금 더 신경쓰고 긴장하게 된다. (이런 상태로 한 두번 싸운게 아니다…) 그래서 신경쓰고 싶지 않고, 나에게 좀 더 집중하고 싶을 때에는 귀를 막고 눈을 가린다. 대략 이어폰끼고 후드 뒤집어 쓴 채 모니터만 보고있으면 그렇단 얘기다.


자주 생각하는 거지만, 나는 집중해서 일할 때 빼면 늘 산만한 상태인 것 같다. 자주 시계를 확인하며 푸시메세지도 대부분 반응한다. 일할 땐 방해금지모드로 해놓긴 하지만, 그래도 자주 메세지를 확인하는 편이다. 그리고 요근래에는 너무 많은 곳에 타임어택식으로 자주 몰입하고 있어서, 몰입 자체만으로 컨텍스트 스위칭이 발생하는 상황이다. 하나에 몰입하면, 다른 것들은 좀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하나에 집중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다 집중하고 있어! 바쁘니까 건들지마! 의 상태인것은 스스로를 돌아보기에 바람직하진 않은 것 같다. 머리가 쉬질 못하니 두통약을 달고 산다.

이상한모임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주제로 함께 글을 쓰는 글쓰기 소모임입니다. 함께 하고 싶다면 #weird-writing 채널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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