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정신의 방] 9화.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보이는 것

벼랑의 끝에서 마지막의 피봇팅이라 생각하고 새로운 서비스를 준비하기 시작했으며, SNS를 통해 평소라면 꿈도 꾸지 못했을만큼 많은 인맥을 만들어 나갔다. 그 속에서 팀빌딩도 다시 할 수 있었고 국내 스타트업계에서 유명한 분들과 함께 식사도 하고 배운 것도 많았다. 프라이머 엔턴십과 글로벌K 스타트업 프로그램을 통해 소기의 성과도 달성했고, 그 속에서도 서비스 개발은 어느정도 일단락 되었다.

겉으로는 나는 꽤 소신있는 스타트업의 대표가 되어있었으며, 나름 마당발이라고 할만큼 인맥이 넓어져 있었다. 만나고 싶다 찾아온 사람이 하나 둘 늘기 시작하며, 어찌보면 업무시간보다 미팅이 더 많은 날도 있었다. 왠지 빠지면 안될 것같은 세미나나 모임에도 꾸준히 참석하려고 노력했고 그 속에서 비즈니스의 기회를 발견하기도 했다.

보이지 않는 것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실패한 리더에 가깝다.

내가 회사인지, 회사가 나인지 모를만큼 대외브랜딩과 활동, 그리고 스타트업만의 사업들에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우리의 회사보다 보여지는 이미지에 더 급급했던것 같다. 내일 당장의 서류와 내일 당장의 발표와 내일 당장의 심사를 위해서 수많은 밤을 샜다.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내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보다 내가 못하는 발표준비와 비즈니스 전략수립에 모든 것을 올인하다보니.

좋은 팀빌딩이 어렵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제발로 찾아온 팀원들을 챙기지 못했다. 프로젝트 회의보다 제출 서류와 발표자료 만드는 것이 더 중요했었을까. 중요한 결정사항에 대한 권한은 내가 쥐고 있으면서. 대표이자 기획자인 나의 생각을 가장 많이 존중해준 개발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팀원들에게 대신 결정해주길 바라며 권한을 떠넘기고 있었다.

평균 8년차의 개발팀. 풀타임 팀원 외에도 Contributor까지 하면 동시에 투입된 개발자는 6명이었다. 고작 3-4년차 기획자가 이끌기엔 너무 과분한 조직이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경력이 많은 팀들이다보니 알아서 글러가주길 바라고 그정도 쯤이야 스스로 리드해갈 수 있을거라 믿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집안꼴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관심도 갖지 않고 돈을 벌어오는 데에만 급급한 가장이 되어버린 걸지도. 도대체 어떻게 살림을 하는거야, 가정교육을 어떻게 시킨거야, 하며 실망했을 때도 있었고 화를 냈던 때도 있었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 니가 언제 관심이나 가졌냐 라는 집사람의 억울함이 귀에 들리지도 않을만큼. 계속 미뤄지는 런칭일정들 속에서 그래 내가 참아야지 하며 사람들을 만날 땐 Show에 가까운 대외활동을 했던 때도 있다.

물론 대표자의 자리가 사업을 수주하고, 사람들을 만나며 대외적인 브랜딩을 하고, 좋은 사람들을 채용해서 팀원의 일을 덜어주고 해야되는 것은 맞다. 리더라는 사람은 내 일도 해야하지만, 내 일이 아닌 것도 해야한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회사를 위해서 희생해야 할 때도 있다. 이런 활동은 매우 중요하며, 조직원들이 그 고충을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다.

나는 이런 활동들이 나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팀원들의 이해를 바라지 않았기 때문에 도와달라 이야기한 적이 한번도 없다. 두 세가지 일을 한번에 하면서 3박 4일 밤을 새더라도 개발팀은 개발에만 집중할 수 있게 했다. 개발자에게 가장 중요한건 농도 짙은 집중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인지. 프로그래밍 이외에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길 바라며 주위에 넘쳐나는 쓰레기들을 치우느라 하루에 2-3시간씩 자가며 일을 하고 또 일을 했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말하는 것에는
신경쓰지 않았으리라
그대신 내가 가진 생명력과 단단한 피부를
더 가치있게 여겼으리라

류시화, <지금 알고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보게된 것

혼자 고민했던 시간들. 아마도 함께 고민하고 일을 나눴으면 개발은 아직도 마무리가 안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무 혼자 고민한 나머지 고민의 히스토리가 팀원들사이에 공유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다음 스텝에 대해서. 우리의 비전에 대해서. 더 공유하고, 쓰다듬어가며, 달래가며, 복돋아가며, 그렇게 천천히 갔으면 됐을텐데.

나의 길이 너무 바쁜 나머지, 뒤따라오는 일행들과 뒤쳐져버린듯한 느낌. 그리고 그들은 길을 잃어버려 영영 헤어져버린 듯한 기분. 한번 벌어지기 시작한 이 간극은 결국 메꿔지지 않았다.

나와 함께 일하고 싶다며, 제발로 찾아온 팀원들. 수백만원의 월급을 포기하고 돈 한 푼 안받아도 되니 함께 일하자던 팀원들. 나는 그렇게 그들을 잃어버렸다. 팀원들은 떠나갔다. 남겨진 나는 정말 힘들었고 많이 울었다. 사실 오래된 일이다. 2014년 10월.

모든 것이 잘못되었구나 깨달았을 때는 너무 늦었겠지만. 이때 이후로 거의 대부분의 대외활동을 접었다. 더이상 사업공고 게시판이나 스타트업 그룹을 기웃대지 않으며, 찾아오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 이외에는 먼저 찾아가거나 만나달라 연락도 하지 않았다. R&D 과제 같은 걸로 회사를 연명할수 있겠지만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았다. 내가 모든 것을 그만두고, 개발에 집중한 그제서야 제품 개발이 완료됐다.

봐야할 것

우리는 밝은 빛을 좇아가는 습성이 있어 애초에 어두웠던 곳이 얼만큼 어두워져가는지를 알지 못한다. 지금 이 글을 읽는, 그리고 스타트업하는 그대에게 중요한 건 무엇인가 묻고싶다.

특히 작년말부터 쏟아지는 세미나와 모임과 행사와 사업과 대회들의 공고를 보고있으면, 그리고 그 떡밥에 몰려 정신없이 파닥거리는 스타트업들을 보고있으면, 아이디어 회의가 중요한지, 팀원을 모으는게 중요한지, 개발을 중요한지, 대외활동이 중요한지, 영업과 사업이 중요한지…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개발자는 개발만 하게 할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고. 그 선택에 후회는 없다.
다만 그들이 뭘 원하는지, 내가 뭘 원하는지가 아니라 우리가 뭘 원하는지 알아가는 과정에 더 많은 노력을 할 것이다. 일이 아니라 길을 생각할 것이다.

남들이 무엇을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남들이 어떻게 성공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우리가,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집중해라. 단지 그뿐이다.

Next, 시간과 정신의 방 10회가 마지막입니다.

앱 & 서비스 기획자입니다. 잘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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