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정신의 방] 2화. 자기최면

지난회 이야기. 아무리 일해도 아무런 성과도 보지 못한 스타트업 1년. 단일 앱 판매 모델을 버리고, 앱 서비스 모델로 전향하기로 했다. 근데 뭘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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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5. 스타트업을 위한 자리는 없다.

지속성 있는 수익모델이 붙을 만한 아이템을 찾아야 했다. 앱스토어를 뒤지기보다 내 폰에 깔린 PIMS 계열의 앱부터 살펴보았다. (직업병때문에 웬만한 앱들은 모두 깔려있다…) 참고로, PIMS(Personal Information Management System)란 메모부터 달력, 일정, 명함관리 등의 개인정보를 관리하는 소프트웨어를 통칭하는 용어다. 프로젝트관리, 할일관리 등의 협업과 관련된 것들보다 더 개인화된 분야라 개개인의 취향에 좌우되며, 사용환경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폭도 매우 넓은 것이 특징이다. 생산성 분야에서 사용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다는 점도 특징이다.

  • 단순한 To-do 부터 GTD까지, 할일관리류
  • Evernote, 솜노트, 어썸노트.. 등의 노트류
  • Fantasical, Sunrise, Calendar 5.. 등의 캘린더류
  • Mailbox, Gmail.. 등의 메일류

내 폰만 하더라도 껴들만한 틈이 보이질 않았다. 물론 100% 만족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벌써 2-3년씩 운영된 것들이 대부분이며, 충분히 사용자들 사이에서 자리를 잡은 서비스들이었다. 그만큼 진입장벽이 높다는 뜻이기도 했다. 새로운 것을 주려면, 기존의 불편함을 100% 아니 120% 씩 극복해야하니 MVP 만으로는 사용자들의 눈높이를 따라잡을 수 없는 시장이기도 했다.

Scene6. 관심갖지 않는 것을 찾아라.

‘PIMS라… 개인정보라…’ 휴대폰에는 수많은 개인정보가 담긴다. 잠깐, 그 중에 가장 크리티컬한건 전화번호부가 아닌가!? 전화번호가 없는 사용자도 없다. 전화기로 전화하지 않는 사용자도 없다. (오?)

하지만 스마트폰 이후로는 멀티미디어 디바이스가 되어버렸다. 전화를 전화답게 쓰지 않기 때문인지, 휴대폰을 바꿀 때, 한번에 혹은 날잡고 편집할 때 말고는 연락처 앱을 쓰는 일이 거의 없다. 연락처관련 앱을 검색하면 ‘그룹관리’ ‘중복 연락처 정리’ 같은 1회성 앱이 대부분인 이유기도 하다. 반면에, 인기있는 PIMS계열의 다른 서비스들은 어찌보면 독립적인 데이터들을 다룬다. 그래서 사용자가 어떻게 사용하냐에 따라 달라지지만, 연락처의 경우에는 일정한 포맷을 띈다. 데이터의 모습이 비슷하면, 사용자 경험이 비슷하다는 가정을 세웠다. 사용자 경험이 비슷하면, 설계는 어려운 일은 아니다. 호불호가 갈리는 UX가 아니라 익숙한 UX를 주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연락처 관련 서비스를 안하는건가? 했는데 망한건가? 안하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했다면 왜 성공한 서비스는 없는걸까? 성공하지 못했다면 왜 성공하지 못한걸까? 답을 찾아야 할 수많은 물음표가 한여름의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온몸이 끈적이고 찝찝했다. 그래도 아이템을 발굴했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돌았다. 바로 확인해보고 싶었다. ‘재미있는 기능 하나만 뽑아서, 단일 앱으로 시장 반응부터 보자!’ 라는 생각에 바로 개발을 시작했다.

“웃기시네~”

아마 이때 쯤이었을 것이다. 마치 넌 아직 꼬꼬마야, 라고 비웃듯이 국내에서만 상반기에 3가지의 연락처 서비스가 등장한 것이다. 다음 커뮤니케이션의 사내벤처 팀에서 카드인을 런칭했고, 수기 명함입력 서비스로 유명한 리멤버도 런칭했다. 어썸노트 개발사로 유명한 Bridea에서도 연락처관리 앱을 개발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런데 왜 하필?? 내가 먼저 하려고 했는데 왜?! 아무도 관심없는 줄 알았는데 왜!? 너무 억울했다. 선착순안에 들어가지도 못한 것 같았다. 타이밍이 늦었다는 생각에 망연자실하는 날도 있었다. 사실 연락처 앱 한번쯤 생각안해본 사람이 있었을까. 생각은 누구나 한다. 그리고 요즘은 개발도 누구나 한다. 그냥 내려놨다. ‘어차피 같지 않잖아?’ 그냥 천천히 가자 싶었다. 대신에 돌아가지 않기로 했다. 결국 단순하게 만들어 보려던 앱은 개발을 중단했다.

Scene7. 나를 설득하라

더군다나 나는 아무리 인기가 많고 니즈가 많아도, 내가 필요하지 않으면 개발하지 않는 성격이다. 먼저 나를 설득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왜 이것을, 왜 내가, 왜 하필 지금이 타이밍인지 설득에 설득해야했다. 더군다나 내가 핵심기능이라고 생각한 것들은 이미 줄줄이 출시된 상황이었다. 따라했다는 얘기는 죽어도 듣기 싫고 무심결에 따라할까봐 벤치마킹도 안하는데 말이다. 이건 기획자로서의 자존심까지 걸린 문제라, 설득하는 과정에서 그들과의 차별성도 찾아야 했다. 산넘어 산이었다.

  1. 유행타는 아이템은 아닌가?
    전화기는 없어지지 않는다. 순간이동기계가 발명되지 않는 이상 먼거리에 있는 사람과 연락을 하고자 하는 니즈는 있을 것이고, 컨택포인트를 꾸준히 최신으로 관리해야 해야 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전화번호부는 큰 관심도 없고 유행도 타지 않는 아이템이다.

  2. 왜 지금이 타이밍인가?
    연락처관리가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 링크드인이나 페이스북 같은 여러가지 서비스들이 연락처와 연동하기 시작하면서 200-300명 수준이었던 내 연락처는 0이 하나씩 더 붙기 시작했다. 단지 소셜관계여서 잘 모르는 사람을 연락처에 넣질 않나, 중복된 사람인데도 한글이름, 영문이름이 다르니 다른 사람처럼 취급하질 않나… 더군다나 메신저까지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어디로 이야기했는지 점점 헷갈려하기 시작한다. 1:1의 관계가 컨택포인트가 많아져 1:n:1의 관계가 되기 시작했으니까.

  3. 무엇을 할 것인가?
    연락처를 서버에 업로드하고, 업로드된 연락처를 매칭하여 사람들 사이에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내 연락처가 바뀌면 내 연락처를 가진 사람들에게도 모두 업데이트 된다. 서버에 실시간으로 백업하는 클라우드 연락처가 되니 아이폰, 안드로이드폰, 웹에서 모두 관리도 가능하다.

  4. 차별성은 무엇인가?
    다른 서비스들이 선관리에 집중한다면, 우리는 후관리에 집중한다. 즉, 이력을 관리하는 것에 집중한다. 전화, 문자, 메일 등 커뮤니케이션 로그를 모으고 어떤 내용의 커뮤니케이션을 했는지 기록한다.

이걸로 다른 사람도 설득했을까? 실패했다. 그것도 철저히.

앱 & 서비스 기획자입니다. 잘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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