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시대, 생산성에 대한 고찰

직업병인지라 새로 나오는 앱들은 워낙 구매를 잘한다. 매달 앱구입비로만 4-5만원씩은 깨지고 있으니 아마 몇년간 쏟아부은 돈을 합치면 맥북을 2대는 샀을거다. 4-5만원씩 사서 뭐하냐면, 한번씩 실행시켜보고 버린다. 어떻게보면 그냥 자료조사에 혹은 시장조사에 혹은 트렌드 파악이 목적이라 정말 잘쓰는 앱은 역시나 손에 꼽는다. 전 세계적으로 좋다는 생산성 앱들은 하필이면 또 비싸서 구매버튼 클릭할때마다 부들부들 떨리긴 하는데, 그래도 산다. 역시나 잘 못쓴다. 새로 나오는 앱을 또 써봐야 하기 때문에 긴호흡을 가지고 실제로 애정을 갖고 사용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1Password 이야기다.

버전3의 아이폰버전을 선물받았다. 나는 아이디와 비밀번호는 나름의 규칙을 가지고 계정을 관리했기 때문에 수백개의 사이트의 접근이 어렵지도 않았다. 필요성도 느끼지 않았지만, 선물받으면서 발을 딛을 기회는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도 실행해보지 않았다.
1년이 지나 버전4가 새로나왔다. 내 계정은 관리가 쉽지만, 회사계정까지 관리하려니 솔직히 외우는 것이 조금씩 버거워졌다. 그래서 작정하고 버전4의 아이폰 버전과 맥용 앱을 모두 구매했다. 원래 가격으로만 계산하면 6-7만원정도 된다.

앱을 구매한 이후에도 원래 로그인했던 룰대로 쓰는 경우가 많았지만, 일부러 들어가는 사이트마다 비밀번호를 난수생성해서 20자리 이상으로 변경했다. 굳이 잘 들어가는 곳들까지 회원정보를 변경하는 일이 번거롭긴 했지만, 앱을 사용한지 몇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다 바꾸지 못했다. 그렇게 계속 연습하면서 비밀번호 관리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오랫만에 접속한 사이트에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기억하지 못해 아이디찾기와 비밀번호찾기를 해야하는 시간. 비밀번호를 2-3번 타이핑해보고 - 틀려서 - 비밀번호 찾기를 클릭하고 - 이름과 휴대폰번호를 입력하고 - 번호/이메일인증을 받아서 - 다시 로그인해서 - 비밀번호를 바꾸는 시간. 아무리 초스피드로 한다해도 나는 그렇게 사이트를 돌아다닐 때마다 3분에서 5분까지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다.

최근 1password로 관리하기 시작한 사이트가 100개가 조금 넘는다. 아직 들어가지 않은 사이트들이 훨씬 많으니 전체 계정으로 따지면 300개정도는 될거라고 생각한다. 그 많은 사이트들을 오랫만에 접속 할 때마다 3-5분씩 버리고 있었다니, 1년에 한번씩만 해보더라도 1000분. 시간으로 따지면 16시간을 내가 잊어버린 비밀번호 찾는데에 쓰고있었다니. 일년은 365일밖에 안되는데, 그중에 하루를 비밀번호나 찾고있었다니! 지금은 단축키 한번이면 로그인을 하니 비밀번호에 쓰던 하루를 벌었다.

생산성 앱은 이래서 쓰는 앱이다.

예쁘거나, 컨텐츠가 가득하거나, 인기가 많아서, 무료라서, 나만의 기능을 줘서 사용하는게 아니라는 말이다.
내가 버리는 시간들을 알뜰히 긁어모아 사용하게하고, 재활용된 시간을 다른 곳에 쓰게하는 시간의 도구가 생산성 도구다. 생산성은 일정 시간동안 일정량을 생산하는 것을 수치화한 것이다. 그래서 생산성도구는 시간을 줄이거나, 양을 늘리게 하는 도구를 뜻한다. 하지만 사람의 퍼포먼스는 급격하게 좋아질리가 없어서(노련미.. 물론 시간이 해결해준다) 일정량을 생산하는데에 들어가는 시간을 줄이기만 하는 것으로도 생산성이 좋아진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생산성 앱은 기능이나 가격, 유행이나 추천이 아니라 본인의 생활/업무패턴에 맞는 제품을 찾아서 정착해야하며, 정한 후에도 본인이 적극적으로 사용해서, 의식적으로 사용했던 것이 무의식적인 습관이 될 때까지 써야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래서 우와! 하는 앱들보다는 그냥 그러네, 흠, 하는 컨셉의 앱이 더 유용한 법이다. 우와! 하는 건 솔직한 말로 그 때 뿐이다.

지금도 나는 우리회사를 생산성 앱을 개발하는 회사이며, 그 중에서도 연락처 관리앱를 개발중이라고 이야기하고 다닌다. 연락처 앱이 왜 필요해? 그냥 전화앱쓰면 되잖아. 어떤 차별성이 있지? 고객에게 줄 가치는 뭔데? 이걸 굳이 돈주고 써야되는건가? 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상황에 맞게, 성심성의껏 대답은 하지만, 내 마음 속으로 하는 대답은 늘 한결같다.

‘네. 별도의 연락처 앱은 필요없죠. 그냥 전화앱 쓰셔도 되요. 차별성은 딱히 없어요. 기본앱처럼 똑같이 만들꺼예요. 그래서 이걸 새로 설치한 앱인지도 모르고 익숙하게 쓰게 할겁니다. 그래서 화려하거나 예쁘지도 않아요. 매일 써야하는 앱인데 볼때마다 질린다고 하면 안만드는게 낫죠. 그리고요, 우리가 줄 수 있는건 없어요. 직접 찾으셔야합니다. 당신이 가진 시간의 가치가 얼마인지 당신이 더 잘 알고있어요. 당신의 1분의 가치를 10원으로 볼 수도 있고, 1만원으로 볼 수도 있지요. 그리고 잘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연락처관리와 인맥관리에 버리고 있는지.’

생산성도구를 만드는 개발자가 줄 수 있는 가치는 없다. 본전을 뽑는건 그대들 손에 달렸다. 지금 들고 있는 핸드폰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버리고 있는지, 나도 모르게 버리고 있는게 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길.

적게 일하고 많이 버는 법을 늘 고민합니다. 일이 되게 하는 것에 간혹 목숨을 겁니다. 지금은 우아한형제들과 함께 일하고 있어요.